주절주절
셜록 3시즌에 대해서 지금까지 했던 얘기 또 합니다. 뭐가 그리 억울하고 분하고 빡이 쳐서 계속 이러냐 지겹지도 않냐 싶은 분들은 스킵해주세요. 저도 이런 제가 싫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
1. '주석 달린 셜록 홈즈'는 원작에 있는 여러가지 설정 오류들을 잡아내준다는 점에서도 꽤 재미있지만 백년 넘게 축적된 팬보이(셜록키언이라는 진지한 이름으로 부르기엔 정말 웃기는 얘기들이 많다)들의 동인질을 훔쳐볼 수 있다는 점에서도 매력적인 텍스트다. 그런데 몇가지 거슬리는 게 있다면 (물론 본인들도 99%는 농담으로 한 이야기겠지만) 홈즈를 찾아오는 젊고 아름다운 여성 의뢰인들마다 그녀들의 첫번째 아젠다가 홈즈를 '성적인 의미로' 노리는 것이었다고 말하는 해석들의 존재이다. 심지어 '정전'에 풀네임과 배경스토리가 모두 소개된 유일한 왓슨 부인인 메리 모스턴마저 처음의 목표는 홈즈였다가 그가 반응을 보이지 않자 왓슨으로 목표를 바꾸었다는 해석이 소개된다. 과감히 말하건데, 이건 남성팬, 즉 팬보이들이나 할 짓이다. 설령 슬래쉬 쉬퍼들이 아니라하더라도 팬걸들은 절대 이런 짓을 하지 않는다. 이유는 모르겠다. 아마도 남자들은 자신들의 우상이 이성에게 성적으로 어필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견딜 수 없는게 아닐까. 베어링굴드가 아이린 애들러한테 한 짓을 봐라. (모팻색히도-_-) 그녀의 첫번째 사랑은 보헤미안 국왕이었고 결혼까지 한 남자는 변호사 고프리 노턴이었는데 (그리고 아마 그의 부인으로 죽은 듯 한데) 아무리 농담이라지만 그녀와 홈즈 사이에 혼외정사로 낳은 아들이 있다니, 자신의 영웅이 성적으로 무력한 것보다는 차라리 비도덕적이길 바라는 소망충족환타지같은 것이 느껴진다. 셜록 홈즈를 이긴 여자가 셜록 홈즈에게 관심이 없다는 사실이 그렇게 받아들이기 힘들었나. 아이린 애들러에 대한 홈즈의 찬사와 숭배는 그것이 홈즈만의 일방적인 마음이고 진짜 피와 살로 만들어진 '여자'에 대한 것이 아니라는 점 때문에 더 매력적이고 실로 홈즈답다고 생각하는 나같은 팬으로서는 정말 모를 심리이다.
1-1. 코난 도일을 모팻과 비교하는 것만으로도 거품을 물 팬들이 있음을 이미 알고 이제는 나도 이것이 모팻에게 칭찬이라기보다는 코난 도일에게 모욕이라는 점에 동의한다. 하지만 나로서는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으니, 바로 이 지점에서 원작자와 팬보이의 '격'이 차이가 나는 것 같다. 모팻은 '그'의 셜록 주변에 그를 사랑하고 흠모하는 여자 캐릭터들을 흩뿌려놓았다. 홈즈는 창조됐을 당시에도 '섹시'하고 '양성적인 매력'의 소유자였다. (다만 시대가 시대이니만큼 아무도 그걸 대놓고 말하지 않았고 작가도 '의식한 채' 그를 창조했을 지는 의문이지만 작가의 무의식은 가끔은 의식보다 훨씬 그럴싸한 짓을 한다. 그러니까 베네딕트 컴버배치는 숨겨져 있던 '홈즈'의 섹시함을 재발견시킨게 아니다. 오히려 홈즈처럼 보이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베네딕트의 섹시함이 '발굴'되었던 것에 가깝다.) 그런데 코난 도일은 홈즈의 그 섹시함과 매력을 나타내기 위해 홈즈의 매력에 홀리는 여자 캐릭터를 동원한 적이 없다. 진짜 없다. 아무리 시대상을 고려해도 어떻게 이렇게까지 없을 수가 있나 싶을 정도다. 시드니 파젯이 그린 좀 잘생긴 버전의 홈즈 삽화를 보고 '여자 팬들은 좋아하겠다'고 시큰둥하게 말했던 원작자와 셜록 홈즈에게 차가운 런던의 소패 뿐만 아니라 섹시 아이콘, 헌신적인 영웅 역까지 모두 맡기고 싶은 팬보이의 차이가 이렇게 분명해지기 위해서는 시즌 1부터 지금까지의 시간과 에피소드는 필요했었나보다. 나보다 현명한 사람들은 훨씬 예전에 눈치챘겠지만. 애정의 정도가 작품의 질을 담보하지는 않는다는 차가운 현실. 약 80년 전에 죽은 것은 둘째치고 돈때문에 잘나가는 자식을 냉혹하게 부려먹은 의붓아버지같은 원작자가 차라리 더 믿음직스럽다는 아이러니. (그런 것 치고는 코난 도일도 승합마차 마부에게 '홈즈 선생도 예전에 비하면 영 못미덥더이다' 소리를 들었다 ㅋ)
2. 왓슨에 대한 태도는 이중적이다. 왓슨에 대한 홈즈의 애정은 느껴지지만 듣다보면 제3자도 빡치는 구박과 그에 맞춰 자기상을 정립하는(...) 왓슨이 자신에 대해 갖고 있는 견해보다 왓슨이 훨씬 영리한 사람이라는 견해가 있는 반면, (그래, 팬걸 중에도 이런 사람 있지, 오빠 쫓아다니다가 오빠 뒤치닥거리해주는 성실하고 얌전한 매니저한테 꽂히는 타입들) 삼대륙 운운하며 여성에 대한 자신의 식견을 은근 내세우는 듯한 왓슨의 말에 회의적인 태도를 보이며 왓슨의 '심미안'에 이의를 제기하는 견해도 있다. (한마디로 그닥 눈이 높지는 않다는 거지...) 왓슨의 변함없는 우정과 충실함, 용기에 대해서는 영국인(?)의 미덕이 체화된 것 마냥 호들갑을 떨면서도 그의 지적 능력이나 '홈즈를 노리고 찾아온' 여성 의뢰인들이 왓슨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했을 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실제로 그 중 하나를 부인으로 꿰어찬 것은 왓슨임에도 불구하고. 심지어 어떤 해석에 따르면 왓슨은 오쟁이진 남편이고 홈즈를 따라다니다가 부인과 사이가 틀어지기까지 한 불성실한 가장이다. 나로서는 읽을 때마다 빈정상하는 얘기다. 왓슨은 '4인의 서명' 이후 실제로 메리와의 결혼생활에 대해서는 별반 언급이 없는데 결혼 후 그의 아내를 두고 그가 한 표현 중 가장 정감이 넘치는 것은 (물론 코난 도일의 악명높은 설정무시로 인해 그 당시 왓슨의 부인은 메리 모스턴이 아니라는 설도 나왔다) '상처받은 사람들은 등대를 찾는 것처럼 아내를 찾아오곤 했다'이다. 거기다 '전에는 이런 얘기 한 적 없었잖아?' 따위의 주석이나 달아놓았으니 나는 서서히 빡칠 수 밖에. 홈즈가 부를때마다 흔쾌히 남편을 싫은 소리 하나 없이 보내주는 대인배 메리 왓슨 여사가 엄연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자꾸 홈즈 따라 다니다가 가정 못지킨 남자라고 왓슨을 놀리냐 이거야. 재해석이든 동인질이든 상관없는데 홈즈한테 달아주는 디테일과 왓슨한테 달아주는 꼬리표의 질적 양적 차이가 너무 현저하잖냐. 툴툴툴
3. 이러다보니 존 왓슨을 사랑하는 내 마음이 자꾸 메리한테도 가는데 이건 단테의 아내에 대한 심정과 비슷하다. 단테가 현실세계에서는 올려다보지도 못했을 꽃 베아트리체를 천국의 사자로 등장시켜 이탈리아 문학사에서 불멸의 존재가 되어가는 동안 그의 옷을 빨고 그의 음식을 만들고 그의 아이를 낳고 그의 곁에서 쭈그렁 할머니로 늙어갔을 진짜 사람. 일찍 어머니를 여의고 18살에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아버지를 기다리다 그 시대 교육받은 여성이 가질 수 있었던 유일한 직업, 가정교사가 되고 아버지가 남긴 인도의 보물 대신 괜찮은 의사를 건졌나했더니 아이도 없이 젊은 나이에 명확한 원인도 없이 요절했다. 어차피 불멸의 콤비라는 명패는 홈즈와 왓슨에게 주어져있고 두 남자가 대중문화의 아이콘을 넘어서 집단적 원형으로 자리잡는 동안 팬이 아니고서야 메리 모스턴이라는 이름은 알지도 못할 텐데. 살아있었을 때조차 남편의 인생에 큰 비중을 차지할 수 없었던 여자인데 그러면 사랑이라도 좀 듬뿍 받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던 것이다. 오래전부터 홈왓을 밀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왓슨이 아내를 사랑하지 않았다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그냥 홈즈에 대한 사랑은 메리에 대한 사랑과는 궤가 다른 것이었고 그게 전형적인 간통남들의 변명으로 쓰이는 레퍼토리임을 알아도 그냥 나의 왓슨은 그런 사람이었다. 비비씨 존을 보기 전까지 나의 왓슨은 한번도 복잡한 사람이었던 적이 없어서 나는 그는 자신이 정신적 간통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도 못했을거라 생각해왔다. (나의 홈왓은 철저한 플라토닉이었음 ㅋ) 정많고 헤픈 남자 존 왓슨도 나쁘진 않지만 홈즈와 메리 사이에서 진지하게 방황하는 왓슨은 내 취향이 아니어서... 이렇게 보면 나도 왓슨의 지적능력에 관심없는 셜로키언들을 원망할 처지가 못된다. 나쁜 놈이 될 바에야 걍 바보가 되길 바란 게 왓슨에 대한 내 애정이었으니까.
3-1. 문득 내가 주왓슨을 좋아하는 이유를 하나 더 깨달았다. 내가 가지고 있던 기존의 왓슨상과 맞지 않았다해도 메리를 대하는 그의 태도가 나로서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했던 어떤 기준을 흡족하게 충족시켰던 것이다. 그는 메리가 자신의 아내가 될 여자라는 점을 한시도 잊지 않았고 우선순위가 명확했다. 그는 홈즈를 내버려두고 메리를 따라나갔고 아내에게 남편이 보여 마땅한 사랑과 존중을 모두 보여주었다. 그는 메리를 홈즈랑 경쟁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았다. 비비씨 존이 셜록이 가짜로 죽기 전까지 자기 여자친구들에게 계속 하게 만들었던 바로 그 일 말이다 ㅋ
4. 나는 지금 계속해서 메리라는 존재를 BBC 셜록 내에 안정적으로 안착시킬 방법을 찾고 있다. 난 메리가 과거가 있는 여자(...)라는 건 상관없었다. 원작 메리도 평범한 사람은 아니다. 아버지가 행방불명 상태로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르고 살아온 세월이 얼마인데. '본즈' 시리즈의 템퍼런스 브레넌 같은 과거설정이다. 그리고 어차피 원작에 나오는 여성 등장인물 중 절반이 숨겨야 할 과거가 있는 여자들이니 그 설정 중 하나를 메리랑 잘 섞으면 매우 풍부한 드라마가 나올 거라 믿었던 것이다. 다만 마그누센이 메리를 협박하는 건 어디까지나 그녀 자체를 노린 것이어야 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드러난 메리의 정체가 예상을 훌쩍 뛰어넘게 강한 설정이라 더더욱 그랬다. 솔직히 난 아직까지도 메리->존->셜록->마이크로프트로 이어지는 프레셔 포인트의 먹이사슬이 잘 납득이 안간다. 셜록까지는 납득할 만 하다. 하지만 3시즌이 묘사한 마이크로프트는 솔직히 셜존 디폴트로 마존을 곁눈질하던 나를 싸하게 얼릴 정도로 차가운 인물이었고 (1,2시즌에서 있다고 생각한 케미를 달리는 기차 밖으로 던져버리는 듯 했음ㅋ) 유일하게 마음을 열어보이는 대상인 동생에게조차 보편적인 형태의 애정을 주지는 않는 사람이었다. 따라서 마그누센쯤 되는 거물에게 약점을 잡힐 바에야 자기 선에서 메리를 처리해버릴 사람같았고 마그누센이 그 약하디 약한 사슬을 믿고 셜록에게 그렇게 개긴다는 건 그냥 납득도 안가고 마그누센 개인의 판단미스로 치부하기엔 전략적으로 너무 멍청해서 설득력이 없었다. 메리가 직접 총들고 나서면 끝날 일이지 않았나. 실제로도 거의 그럴 뻔 했고. 극 전개의 논리가 명확하고 분명해도 대중을 상대로 한 서사에서 판을 이렇게 짜면 뒷이야기가 나올 텐데 심지어 일이 왜 그렇게 돌아가는지 제대로 된 주축도 없이 이렇게 큰 판을 빠르게 벌리기까지 하니 결국은 이야기의 기승전결 뿐만 아니라 존-메리-셜록이라는 캐릭터들까지 함께 무너지지 않았나. 안전장치 없이 롤러코스터를 타면 어떻게 되는지 303는 온 몸으로 보여줬다.
4-1. 아 놔 메리 이야기하다가 왜 또 303으로 갔디야... 아무튼 이 에피는 까도 까도 빡이 치네. 비록 관대한 정실부인의 정형성이 사람에 따라 지겹거나 역겨울 수는 있어도 (나는 아니었다) 302까지는 이 이야기가 묘사하는 메리라는 캐릭터는 최소한 안정적이기는 했다. 내 생각은 그렇다. 존과 셜록이란 희대의 커플 사이에 끼어들어간 여자라는 포지션에서 할 수 있는 만큼은 독자적인 개성과 무게감을 갖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난 아만다 애빙턴의 캐스팅이 불필요했다고 보지는 않는다. 이제 겨우 만난지 1년 좀 넘었을 커플이 포스는 동거한지 10년째라 위화감이 들지 않는 건 아니지만 난 바로 그 점이 제작진이 노린 점이라 생각했다. 1시즌부터 차곡차곡 쌓인 셜존의 케미와 대등한 정도여야 할 필요가 있었으니까. 게다가 두 사람은 연기의 합도 찰떡같이 잘 맞았다. 실제로 부부관계인 연기자들을 커플로 캐스팅한다해도 이 일은 생각하는 것만큼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303에서 밝혀진 메리 모스턴의 정체는 302까지 우리가 알아온 메리 모스턴에 새로운 면을 더해주는 게 아니라 그냥 예전의 모습들을 지워버렸다. 그녀의 본질은 셜록이 규정한 대로다. '존이 선택한 싸이코패스' 그녀의 재치나 유쾌함, 명석함, 배려심 등등은 그 한마디로 그냥 곁다리가 되어버렸다. 다시 한번 언급하지만 아무리 뻔한 '정실부인' 퀄리티라고 해도 한순간에 그 모든 걸 그렇게 훌러덩 뒤집어 엎었다가 정상적인 정서를 가진 사람이라면 어이가 없을 만큼 손쉽게 다시 꿰매버리는 건 해서는 안되는 짓이었다. 누가 살아있는 사람을 수술하는 데 그런 방식을 쓰나.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을 만들때나 할 수 있는 짓을. 실제로 303은 뒤로 갈수록 더더욱 망가진다. 셜록이 메리의 총을 맞고 마인드팰리스에서 헤매는 부분은 존을 향한 셜록의 애정이 너무 크고도 아름다워 뿜겼을 뿐 (그리고 그게 내가 생각해온 셜록상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서 어안이 벙벙했을 뿐) 이야기 자체가 망가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존이 메리의 정체를 알고 셜록의 부모님의 집에서 그녀를 용서하는 장면은 그냥 쉣이다. 이건 뭐 어떻게 커버를 쳐줄 수가 없다. 존이 메리의 정체를 알게 된 후 몇개월의 시간이 지났음은, 그리고 그동안 존과 메리가 제대로 된 대화 한번 나누지 않았음은 메리의 대사로 드러나는데 이쯤되면 난 그냥 직무유기같다. (이건 모팻의 일관된 문제점이기도 하다. 그가 러셀 후 시절에 쓴 에피소드들은 매우 훌륭하다. 그가 영리하고 유능한 작가임은 의심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가 지금까지 자기가 뿌린 떡밥들을 한꺼번에 수거하기 위해 '닥터의 시간' 크리스마스 스페셜에서 한 짓은 이거 뭐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고.... 맷닥 보내느라 아팠던 내 가슴이 참...) 복잡한 질문에 어울리는 성실한 답안을 작성하는 게 아니라 그냥 질문 자체를 지워버리는 짓이다. 이 드라마는 시종일관 자기가 꼭 해야 하는 일들은 방기하고 굳이 할 필요가 없는 짓들을 꼬박꼬박 하는 경향이 있는데 여기서 아주 정점을 찍는다. 존은 그냥 바보다. 아니, 바보라고 하면 바보에게 모욕적이다. 지능이 낮은 사람들은 그 나름대로의 논리체계가 있을 테니까. 존은 그냥 내부에 시스템이라고 할 만한 게 없다. 텅 비었다. 이 텅 빈 껍데기를 주고 시청자들에게 알아서 채워넣으라는데 난 생각하면 생각할 수록 쌍욕이 나온다. 셜록이 총에 맞아 죽을 고비를 넘기는 모습을 바로 곁에서 지켜봤을 존이, 생각치도 못한 배신에 분노했던 존이 자신의 고통과 갈등을 다스리는 부분, 그게 진짜 드라마아닌가? 근데 그건 물로 씻은 듯 간 곳이 없다. 우리가 본 건 셜록에게 '널 쐈잖아' 한마디하며 매섭게 그녀를 노려보던 존의 모습뿐이다. 임산부라 그랬는지 마누라라 그랬는지 아니면 셜록 등쌀 때문인지 화도 제대로 못냈지. 이건 뭐 그냥 보살이여. 장자의 빈 배와 같이 그 누구와도 갈등을 빚지 않는 해탈한 존재인가벼.
4-2. 끄아아아악 안돼안돼 자꾸 303 얘기 하지 마! 애비!
나는 지금 아만다 애빙턴의 모습을 한 메리 모스턴을 셜록 시즌 3 내용에 성공적으로 안착시킬 방안을 찾고 있다. 나보다 훨씬 똑똑한 사람이라면 가능할 것도 같은데 일단 셜록 시즌3가 이 지경이 난 상황에 뭔가 생산적인 제안을 하기에는 난 원작에 너무 구애되어 있다. 메리 모스턴은 평범함과 안정성에 대한 존의 욕구를 채워주는 사람이었어야 했다는 기존의 구도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과거가 있는 것은 상관없으나 그녀 자체는 존처럼 평범하면서도 비범하거나 괴짜인 구석이 있어야지, 셜록과 같은 과로 묶일 수 있는 존재여서는 안되었다는 생각의 틀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이야기는 결국 셜록과 존의 이야기거든. 메리는 어느 순간 평온하고 예의바른 배경으로 빠져줘야 한다. 그렇게 빠졌음에도 불구하고 원작 메리는 결국 죽었다. 존 왓슨이 셜록 홈즈의 친구이자 블로거(전기작가)이자 동거인이라는 설정이 생각보다 이야기에 큰 영향력을 행사해왔던 것이다. 하지만 이 난리난리개난리를 치르고 메리와 존이 이혼하거나 (애는 어쩌고?!) 아니면 메리가 애를 낳다가 죽거나 (아무리 21세기에서도 종종 있는 일이라지만 이건 난 반댈세!) 하는 건 그냥 망도 아니고 개시망이다. 3시즌을 스스로 부정해버리는 거나 마찬가지다. 그럼 메리와 아이를 죽이지 않고 처리(...)할 수 있는 방법이... 3시즌은 이지경으로 만들어놓고 메리와 아이를 배경으로 빼버리는 건 말도 안되고 결국 지금 내게는 메리-존-셜록의 런던 어벤져스 결성 밖에 생각나지 않는다........... 아하........ 이걸로도 뭔가 재미있고 그럴싸한 이야기를 만들어낼 순 있겠지. 실제로 저 설정이 매력적이라고 느끼는 사람도 있을 거고. 하지만 난 아닐세. 4시즌이 어떻게 나올진 모르겠지만 정말 그럴싸하게 만들어주지 않는 이상 이 개미지옥이라는 셜록 팬덤의 한줄기 빛과 같은 출구가 될 것임은 자명한 것 같다.
4-3. 아 놔 그 이름도 찬란한 취사선택. 쟤네들은 해서는 안되었지만 나는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그 아름다운 짓을 왜 못해서 이 난리인지... 걍 죽이고 말까봐. 애낳다가 죽든지 난소암으로 죽든지 백혈병으로 죽든지 과거의 업보가 찾아와서 인과응보로 죽든지 모리짱이 말했듯이 사람은 언제나 죽는 건데 왜 그걸 못해서 난 이 고뇌를.... 그토록 바라던 미망인 존, 홀아비 존도 해보고 좋구만...
5. 존의 결혼생활에 대해서도 다뤄보고 싶다던 1시즌 unlocking sherlock 모팻이 생각이 나네... 하지 말라고 비명을 지르는 팬들도 있었는데 나는 무덤덤했으와. 어차피 원작에서 결혼했다 금방 쫑나는데 뭐 특별한게 있겠어 싶었지비. 헌데 난 댁이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들 줄은 차마 몰랐으와. 팬덤이랑 이렇게 싸우자고 덤벼드는 것치고는 정작 만들어놓은 결과물이 팬덤에서 한번씩 건드려보았던 거 다 모아서 돈들여 지어놓은 테마파크 꼴이라 참 어이가 없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