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리 돌아오지도 못했는데 짦기까지 해서 정말 죄송함다 ㅠㅠㅠ
"...어제 오후 7시 30분경, 포츠위츠 교도소로 향하던 수송차가 절벽에서 굴러떨어지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이 사고로 인해 호송 중이던 죄수 한 명이 사망하고 업무를 담당했던 두 교도관이 부상을 입었습니다. 경찰은 담당교도관들로부터 자세한 사건 경위를 조사 중입니다. 다음 소식 알려드리겠습니다...."
셜록은 TV를 꺼버렸다.
그 후, 42일동안 셜록은 존 왓슨에 대해 일언반구의 말도 꺼내지 않았다. 자기가 필요하니 살려놓으라고 해놓고 한달이 넘게 아무런 연락도 하지 않는 동생의 행동에 대해 마이크로프트가 무슨 생각을 했을 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셜록 홈즈가 그의 형에게 존 왓슨을 살려놓으라고 종용한 지 43일째 되는 날, 먼저 전화를 건 쪽은 마이크로프트였다.
셜록은 생각했다. 마이크로프트를 형으로 둬서 좋은 점이라고는 그의 직원들은 비밀리에 운영되고 있는 정부기관의 본사로 자신을 안내할때 눈가리개를 씌우는 바보짓을 하지 않는다는 것 정도이다. 대체에너지를 연구하는 연구소인양 세워진 모던한 건물에는 풍력발전기까지 설치되어있었다. 셜록은 코웃음을 쳤다. 실내는 정신병동과 반도체 제작공장을 섞어놓은 것 같은 디자인이었다. 오고 가는 사람들이 의사 가운이나 실험복 대신 평범한 정장을 입고 있을 뿐 이 건물 안 공기에는 편집증과 강박증을 유발하기에 충분한 유독물질이 떠돌고 있었다. 하나같이 유사한 구조라서 1년 이상 근무한 사람도 주의를 집중한 채 이동하지 않으면 헷갈리기 쉽상이라는 복도를, 셜록은 빠른 걸음으로 스쳐지나가며 머릿속에 집어넣었다. 이 구조도가 런던의 지도처럼 그의 하드 드라이브에 반영구적으로 저장될지, 아니면 3개월만에 폐기처분될 것인지는 지금으로서는 셜록 본인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1분 24초 후, 그를 여기까지 안내해온 직원이 마침내 발을 멈추고 겉보기에는 이제껏 지나쳐온 무수한 문들과 전혀 다를 다 없는 평범한 문을 열었을 때, 그리고 그 안에 있는 존 왓슨을 봤을 때, 그 구조도는 셜록의 뇌리에 영구히 새겨졌다.
존 왓슨은 분명 아무런 설명없이 여기서 기다리라는 말만을 들었던 것이 틀림없다. 그의 몸짓 언어는 거의 고함을 지르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훈련되지 않은 자의 눈에는 혹시 무관심인가 싶을 것이다. 그것은 무관심으로 가장하고 있는 적개심이었다. 몸을 문의 반대방향으로 비틀고서 한손으로 턱을 괸 채 시선을 돌리고 있었다. 방문쪽에서 최대한 멀어지고 싶지만 탁자와 의자의 위치를 바꿀 수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여기에 앉아있는 것이라고 온 몸으로 주장하고 있는 듯한 자세다. 그쪽에서도, 입구를 통해 들어오는 쪽에서도 바로 상대방의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수동공격적이군.' 셜록은 마이크로프트가 자신에게 연락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알았다. 저도 모르게 슬며시 입가가 올라가려는데 그래도 문이 열리고 사람이 들어오는 소리가 났는데 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는지 존 왓슨의 시선이 힐끗 이쪽으로 향했다.
"Ah, another Mr. Holmes, how good to see you."
거의 군청색에 가깝게 가라앉아있던 눈동자에 새파란 빛이 돌아왔다. 반가움은 명백했다. 존 왓슨은 셜록을 보자마자 몸을 돌려 바로 앉더니 정중하게 그를 맞이했다. 셜록의 입가를 장식하려했던 은근한 미소는 순식간에 증발했다. 존 왓슨의 왼쪽 눈두덩이 시퍼렇게 멍들어있었기 때문이다. 멍의 색깔로 보아 예전 부상의 흔적일 수는 없었다. 그는 이미 이 기관에 42일동안 머무르고 있었다. 결론은 한가지 뿐이었다.
"...요원들 중 누가 당신을 폭행했습니까?"
존은 이상한 콧소리를 내며 손을 내저었다.
"이름을 기억할 가치도 없는 얼간이 같은 놈이 하나 있었습니다."
"...있었다고요?"
"그가 날 먼저 때렸고 난 그를 더 세게 때렸습니다. 아마 한동안은 여기서 볼 일 없을 겁니다."
5대 1로 싸우면서도 한 사람은 그 자리에서 사살하고 다른 한 사람은 코마 상태로 몰아넣고 또 한 사람에게서는 영구적으로 생식능력을 박탈해버린 남자의 말이었다. 셜록은 존 왓슨의 말을 100% 믿었다. 다만 그 신뢰와는 별개로 나중에 그의 형과 매듭지어야 할 일이 생겨버린 것 뿐이다. 셜록은 이상하게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속내를 애써 진정시키며 자리에 앉았다.
"What happened?"
셜록의 눈썹이 괴이쩍은 아치를 그렸다.
"그건 내가 당신에게 해야 할 말 같은 데요."
"전혀 아니네요. 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길래 당신이 내 앞에 나타난 겁니까?“
셜록은 전혀 그답지 않은 일을 했다. 그는 침묵을 지켰다.
“내가 이 시설에 온 지 한달하고도 2주 정도 지난 것 같은데...”
“43일째입니다, 정확히.”
“예, 바로 그겁니다. 당신은 그걸 알고 있었단 말이죠. 내가 여기에 온 정확한 날짜를 기억하면서도 한달 넘게 내 앞에 나타나지 않았어요. 당신 형도 마찬가지였고 덕분에 그동안 난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지리멸렬함을 다 맛봐야했고 말이죠. 허나 전 한번 한 약속은 지키는 사람입니다. 그닥 믿기 어렵겠지만. 그래서 척추가 꼬일 것 같은 지겨움과 진부함과 무례함 속에서도 최선을 다해 협조중이었죠. 그런데 여기 이렇게 당신이 나타났네요. 만약 여기 있는 사람이 당신 형이었다면 난 기관이 내 협조에 충분히 만족하고 있지 못하다는 뜻으로 받아들였을 겁니다. 하지만 당신이란 말이죠.”
“당신이 생각하는 나는 여전히 마이크로프트 홈즈의 히든 카드로군요.”
“그건 알아서 생각하시고, 다시 한번 묻겠습니다. 무슨 일이죠? 뭐가 변했습니까? 확신하건데 내가 부러뜨린 브라운 요원의 아래턱과는 아무 상관 없을 것 같군요.”
“이름을 기억할 가치도 없다더니?”
“그의 성만 압니다. 이름은 여전히 몰라요.”
셜록은 또 다시 별로 그답지 않은 일을 했다. 그는 부드럽게 웃으며 물었다.
“What happened?”
자신이 한 질문을 그대로 되돌려받으면서도 방에 들어온 셜록 홈즈를 본 순간부터 존의 눈동자에 떠올랐던 새파랗고 경쾌한 빛은 전혀 사그라들지 않았다. 존은 셜록 홈즈나 그의 형, 혹은 기관과는 다르게 진실이나 사실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그의 이야기는 이미 끝났다. 남은 것은 길고 긴 에필로그 뿐이다. 그래서 그는 그동안 자신이 참으로 굶주려있었던 것, 대화의 즐거움 외의 다른 것에는 아무런 관심을 두지 않기로 했다.
“음, 브라운 요원이 저와 제임스의 관계에 대해서, 에, 매우 저열하고 무례하며 상당히 호모포빅한 코멘트를 몇 개 날렸더랬죠. 그 대신 그의 턱이 날아가게 된 거고요.”
그렇게 고급개그는 아니었지만 존은 나름 자신의 농담에 자신이 있었다. 그랬기에 셜록 홈즈가 그 말에 전혀 웃지 않자 (오히려 얼굴을 굳힌 것처럼 보였다) 존은 대화를 이끌어나가는 자신의 기술에 약간 자신감을 잃었다. 실패한 농담을 수습하는 첫 번째 단계는 헛기침, 두 번째 단계는 상대방의 근황을 묻는 것이다. 존은 정석대로 했다. 셜록은 잠깐 동안 침묵을 지켰다. 그것이 자신의 발언에 무게를 두기 위한 일종의 테크닉에 불과하다는 걸 알면서도 존은 셜록이 하려고 하는 말에 온 주의를 집중했다.
“마이크로프트는 당신이 신문(interrogation)에 적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전 기관에 최선을 다해 협조하고 있습니다. 진심이예요.”
“하지만 기관에 온 후로 지금까지 당신은 나와 처음 만났던 날 내게 주었던 것과 유사한 정도의 유용한 정보를 제공한 적이 한번도 없습니다, 닥터.”
존 왓슨은 약간 민망해하는 것 같았다. 셜록은 그 감정이 무엇으로부터 유발되었는지 파악할 수 없었다.
“뭐, 솔직히 기관 소속의 질문자들이 당신만큼 흥미롭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지요. 당신과 내가 처음 만났던 날, 우리가 한 건 ‘대화’였지만 – 적어도 난 그렇게 느꼈어요 - 여기서는 나와 대화하고 싶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 같고요. 알아요, 내가 웃기지도 않게 센티멘탈하게 굴고 있다는 거. 하지만 좋고 싫은 건 어쩔 수 없는 거죠. 난 여기 있는 게 싫어요. 그건 사실이예요. 내가 까다롭게 굴고 있냐고요? 가끔은요. 하지만 결코 의도적인 건 아닙니다. 나는 정말로 내가 기억해낼 수 있는 모든 것들을 털어놓았어요.”
셜록은 자신이 42일 동안 존 왓슨을 만나려는 어떠한 자발적인 시도도 하지 않았던 이유를 분명하게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지금 이것이 약간이라도 단서가 될 수 있을까? 존 왓슨을 만날 때마다 셜록 홈즈는 별로 그답지 않은 일을 하게 된다.
“....적어도 그때 나누었던 대화에 대한 감회는 우리가 공유하고 있군요.”
존은 미소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