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드디어!!!!!!
아아 드디어 둘을 한 지붕 아래로 보냈사와~ 뭔가 무리수같지만 됐사와~ 더 생각하기 귀찮사와~ 큰 짐을 던 기분이어와~ 여기서부턴 원작 케미에 숟가락만 얹고 가도 될 것 같으와~
2. 쉽고 편한 지름길 냅두고 혼자 고산지대에서 산소부족으로 헉헉대며 전진하는 기분이지만 뭐, 제가 하루 이틀 이러고 산 것도 아니고.... 지금까지 거쳐온 팬덤들을 돌이켜보자니 좋아서 이런다기보다는 그냥 할 줄 아는 게 이게 밖에 없어서 이러고 사나봐요...
3. 쓰는 저는 할 줄 아는 게 이거 밖에 없으니 이러고 있는다고 쳐도 읽어주시는 분들이 대체 뭐가 마음에 드셔서 계속 읽으시는 지 잘 모르겠어요 ㅠㅠ 이 외진 곳까지 일부러 찾아와주시는데 이런 소리나 하고 있고 죄송합니다 ㅠㅠ
존 왓슨의 모든 생활은 정부권력의 통제 하에서 이루어졌다. 정부는 존 왓슨이 제임스 모리어티와 함께 하던 시절 소유했던 의복과 기타 물품들의 소재를 찾아 그것들을 돌려줄 바에야 모든 걸 새로 사주는 편이 더 싸게 먹힌다고 생각했다. 그들이 존을 수용소에 집어넣은 것은 아니다. 직원들의 관사쯤 되는 작은 플랫에는 수수하지만 세련된 북유럽풍의 가구들과 제법 고른 사람의 개성이 느껴지는 소박한 디자인의 커튼도 달려있었다. 다만 일체의 조리기구나 화기가 허용되지 않았다. 제조과정에서부터 사람의 신체와 생명을 위협할 목적으로 만들어지지 않아도 대개의 물건은 존 왓슨의 손에 들어가면 무기화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존은 싸구려 플라스틱 텀블러에 뜨거운 얼그레이를 마셔야 하는 걸 불평하는 대신, 자신에게 한 사이즈 큰 바지를 사준 대신 버클이 금속으로 된 벨트를 잊지 않고 챙겨준 것을 감사하기로 했다. 커튼은 좋았지만 옷은 별로였다. 존이 평소 입던 스타일에 비해 지나치게 포멀했고 신경에 거슬릴 만큼 고가였다. '국민 세금을 이상한 데다가 낭비하는 군.' 그나마 셔츠 소매에 달린 것이 커프스가 아니라 플라스틱 단추라 다행이었다. 옷차림은 인격까지는 아니더라도 마음가짐을 반영하기는 한다. 타이는 없었지만 셔츠의 단추를 목 바로 아래것까지 모두 채우고 문 밖을 나서는 존의 마음은 갑자기 잡힌 ' 약속'으로 싱숭생숭했다. 마이크로프트가 그를 보길 원했다. 기관이 아니라 플랫 앞으로 찾아오겠다고 했는데 현재 그의 집이라고 부를 수 있는 그 작은 주거공간 어디에도 방문객에게 내놓을 만한 차(뿐만 아니라 찻찬도)가 없다는 걸 생각해보면 (존이 마신 얼그레이는 텀블러만큼이나 저렴한 종이티백이었다) 마이크로프트는 예의 그 검은 대형 세단 안에서 한발자국도 나오지 않을 것이 뻔했다. 존은 그가 두렵지는 않았지만 껄끄러웠다. 마이크로프트나 다른 사람이 으례 그렇겠거니 하는 이유와는 좀 다른 이유였다. 그는 자기가 죽인 남자를 친구로 생각하는 사람과 얼굴을 마주하고 있는 것이 불편했다.
"오랜만입니다, 존. 잘 지냈습니까?"
아무리 붙임성 있게 굴어봤자 이 남자의 골수에 스며있을 권력자의 풍모가 존에게 덜 거슬리는 일은 없다. 본인도 그것을 알고 있을 것이고 그런 자신을 바꿔봐야겠다는 생각도 한 적이 없을 터였다. 저 남자의 세계에선 그게 반드시 불리한 점이지도 않을 것이다. 존은 높으신 분들의 세계에 대해서 잘 알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보편적인 진리는 어디에나 들어맞는 법. '바다에는 언제나 더 큰 고기가 있다.' 존은 언젠가 마이크로프트가 그의 상급자 앞에서 어떻게 행동하는지 구경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존의 성의없는 끄덕임에 불쾌한 기색도 없이 마이크로프트는 꼬아앉은 무릎 위에 깍지낀 손을 내려놓았다. 존은 오른손에 낀 반지를 알아보았다. 왼손이 아니니 결혼반지는 아닐 것이다. 베스트 주머니 안쪽으로 이어지는 시계줄로 보아 이 남자는 무려 회중시계를 들고 다닌다. 손목시계도 차지 않는 남자가 반지를 단순한 장신구로 끼고 다닌다고? 존이 자신의 손을 바라본다는 것을 알면서도 마이크로프트는 태연하게 무시했다. 시선과 표정을 잘 감추지 못하는 자신을 아는 만큼, 존은 자신이 무시당했다는 사실도 즉시 깨달았다. 하지만 그런 사소한 대응에 일일이 마음이 상하기엔 존은 자신의 처지를 잘 기억하고 있는 편이었다.
"요즘 당신 덕분에 저희 직원들이 대단히 일을 편하게 합니다. 그런 점에서는 확실히 감사드려야겠군요."
"감사받을 만한 일을 한 기억은 없습니다."
"이상한 일입니다. 분명 예전과는 달리 일의 진척이 매우 괄목할 만한데 당사자가 이렇게 나오니 나는 누구에게 인사를 전하면 좋을까요."
"그냥 당신 동생에게 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별로 상관없잖아요."
"어째서요?“
존은 그가 자신을 놀리고 있는 거라 생각했다. 증오나 혐오, 경멸의 대상이 되는 것은 마땅히 감수해야 할 취급이라 생각했지만 이런 것까지 참아야 할 이유가 있나? 존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당신이랑 당신 동생이 그런 인사를 주고 받을 사이는 아니지 않나요?"
"....왜 그렇게 생각하죠?"
"지금 이거 일종의 테스틉니까?"
"아닌데요."
"그럼 아까부터 계속 뻔히 아는 답을 굳이 물어보는 까닭이 뭡니까?'
생각해보면 좀 후안무치한 반응이다. '크리스토퍼 하비' 존은 이미 있는 대로 불손한 태도를 취한 뒤 한발 늦게 그것을 깨달았으나 이제와서 사과하고 태도를 고치는 건 너무 우스운 꼴이다. 자신에게 감정이 있다는 걸 본인이 부정하고 있는 판국에 가해자가 나서서 설치는 모양새라니. ‘차라리 뻔뻔해지는 게 낫지.’ 어차피 자신의 알량한 양심이 마지막으로 제대로 기능한 때가 언제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좋습니다. 우리 사이에 괜히 돌아갈 필요는 없지요. 양해해요, 존. 이젠 어쩔 수 없는 습관이 되어버린 모양입니다."
마이크로프트는 상의 안주머니에서 자그마한 종이조각을 하나 꺼내어 존에게 건네주었다. 펼쳐보자 거기에는 '베이커가 221B번지' 라고 적혀있었다.
"이게 뭐죠?"
"당신의 새 거주지입니다."
존은 그리 놀라거나 당황해하지는 않았다.
"제 관할권이 다른 기관으로 넘어갔나요?"
"으음.. 그렇게 표현할 수도 있겠네요."
".....그렇군요."
그것을 끝으로 더이상 물어보려 하지 않는 존의 태도에 마이크로프트는 약간 김이 샜다. 셜록을 자극시키던 방법(그리고 대개의 경우 다른 사람에게도 통하던 방법)이 이 남자에게는 먹히지 않았다.
"당신은 셜록과 함께 생활하게 될 겁니다."
펠멜 가에 위치한 마이크로프트의 타운하우스는 화이트홀의 제 2기지였다. 그곳은 마이크로프트의 사적인 거주지였지만 그의 상관과 부하직원들은 물론, 마이크로프트 본인조차 자신에게 사생활이라는 것이 존재한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집이라기보다는 재택근무지라고 부르는 것이 어울리는 공간이었다. 수많은 보좌관과 비서진들이 관공서처럼 그 집의 문턱을 드나들었고 안보기구는 테러 가능성을 계산하여 특별히 감시요원들을 배치하였다. 길고 긴 관료제의 고리를 따라 내려가 그 누구도 정확한 근원을 알지 못하는 명령은 지역경찰에게도 내려졌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3시간 간격으로 행해지는 순찰은 이례적이다. 손만 뻗으면 갓 우린 차가 대령되고 종만 울리면 시간과 관계없이 식사가 제공되는 장소임에도 불구하고 셜록이 이 집에 진저리를 치며 오지 않으려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셜록은 형의 집에, 영국 정부의 심장부에 와 있었다.
"스나이퍼를 추적하는 것은 가능한가?"
"유령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졌어."
셜록은 입술을 비틀어올렸다.
"기대도 안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덜 실망스러운 건 아니군."
셜록은 그때까지 악의라는 것은 그저 한여름의 더위나 잘못된 방향으로 부는 바람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앤더슨이 내뿜는 악취같이, 좀 불쾌하고 거슬리지만 무시하고 넘어가지 못할 것도 없는 하찮은 일상의 요소처럼. 하지만 그때, 그 정체불명의 스나이퍼의 총알이 자신의 머리 바로 옆을 지나갔을 때 느꼈던 그것은 무기였다. 칼이나 둔기같은 물체였다. 질량이 있었고 힘을 주어 내리치면 다른 물체를 파괴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 무게감이 셜록으로 하여금 악의라는 감정을 재정의하게 했다. 그때 그가 느꼈던 그 납덩어리같은 것을 악의라고 부른다면 앤더슨이나 도노반이 그에게 배설하는 감정들은 가벼운 투닥거림이라고 해도 무방했다. 그런 것을 어디에서도 보고 들은 적이 없었기에 셜록은 잠시 그 악의가 자신을 향해 있다는 사실도 잊고 경이로워했다.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당시 상황에 압도당했다고 표현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마이크로프트는 자신이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만큼 그의 동생을 생각했고 따라서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위기에 제 발로 걸어들어가 확실하게 목숨을 잃게 될 위기에 처했던 셜록에게 아무런 훈계도 추궁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총알에선 나온 게 있단다."
"뜸 들이지 말고 얘기해."
"이 분야에 대해선 나보다 네가 더 나을 것 같구나. 저격용 라이플 중에서도 L96A1 모델에서 나온 총알이라는 구나."
"....나오긴 뭐가 나왔다는 거야. 개나 소나 다 쓰는 총을."
"으흠, 하지만 이건 기록에 남아있는 걸."
"무슨 기록?"
"군용 총기 폐기 기록."
“..........”
"어디에서 폐기됐을 지 한번 맞춰보겠니?"
".....아프가니스탄이로군."
"바로 맞추는 구나. 그럼, 이제 누구 생각나는 사람 없니?"
문 뒤에서 나온 사람이 인자해보이는 노부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존은 겉으론 크게 드러내지 않았지만 매우 당황했다. 점점 그가 생각했던 셜록 홈즈와는 거리가 먼 세계로 진입하고 있다. 단정하고 고풍스러운 외관의 건물은 멋스러웠지만 그만큼 낡아보였다. 폄하하는 건 아니지만 유학생이나 장기로 해외에 파견 나온 독신자들이 거주할 것 같은 집이었다. 거기에 이 눈웃음 가득한 노부인까지. 존은 딱히 목적어도 없이 이건 뭔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형이랑 같이 살 리는 없으니 펠멜가는 아니고 벨그라비아도 느낌상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것보다는 fancy한 곳에서 살거라 생각했는데.’
“누구세요?”
낯선 사람의 모습에 경계하는 기색도 없이 상냥하게 묻는 노부인에게 존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안녕하세요, 셜록 홈즈씨 계신가요?”
“이런, 지금 집에 없는 데요. 의뢰인이신가봐요?”
“아, 그런 것은 아니고....”
노부인은 경계심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친절한 태도로 존이 대답하기도 전에 문 옆으로 비켜서서 존이 들어올 자리를 마련해주었다.
“중요한 일이면 들어와서 기다리시겠어요?”
뭐라고 설명해야 좋을지 몰라서 우물쭈물대다가 뻣뻣한 태도로 현관문을 들어서는 존을, 노부인은 호의와 호기심으로 반짝거리는 눈빛으로 지켜보았다.
“저... 존 왓슨이라고 합니다.”
“아멜리아 허드슨이예요. 셜록의 집주인이랍니다.”
‘세들어 살기까지.’ 존은 저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다. 새삼 자기가 제임스와 함께 다니면서 얼마나 버릇이 잘못 들었는지 깨달았다. 존은 런던 대학에 진학했을 때부터 단 한번도 자기 소유의 집에서 살아본 적이 없었지만 적어도 모리어티와 만난 후로는 임대기간이나 임대료를 걱정하면 산 적이 없었다. 프랭크 러스틴, 필립 그린, 엠마뉴엘 슐레징거, 계약서에 기재되어 있는 집 소유주의 이름은 언제나 달랐지만 그 집들은 모두가 제임스의 소유였다. 그리고 단순히 ‘임대인’이라는 부분만 따로 떼어놓고 보면 제임스만큼 대하기 편한 주인은 달리 없었다. 그는 재미만 있다면 자기 임차인이 폭발물로 집을 날려버려도 손뼉을 치며 깔깔 웃을 위인이었다.
“그렇다면 정식으로 인사를 드려야겠습니다. 앞으로 셜록 홈즈씨와 같이 살게 된 존 왓슨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허드슨 부인의 환대는 좀 얼떨떨한 느낌이 있을 정도로 열렬한 것이라서 존을 당황하게 했다. 그저 함께 살게 됐다고 말했을 뿐이고 셜록에게 따로 언질을 받은 것 같지도 않았는데 1층의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가더니 차에 갓 구운 비스킷까지 (맛이 아주 기가 막혔다) 가져다주며 어쩌다 셜록과 만나게 됐는지, 함께 살겠다는 결정은 어떻게 내리게 된 건지 묻기 시작했다. 무리하게 캐물었다면 존도 조개처럼 입을 다물어버렸을 텐데.
“정말 잘됐어요! 난 항상 그 애 곁에 누군가 있어줘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라고 말하며 기뻐하는 부인을 상대로는 도저히 말을 끊거나 질문을 무시할 수가 없었다. 자기가 예전 정신과 상담의 앞에서도 이렇게 고분고분했더라면 다시 뛸 수 있게 해주겠다는 제임스의 꾐에 빠지는 일은 없었을 텐데 말이다. 셜록 홈즈와 친분이 있어서 함께 살게 된 게 아닌 만큼 존은 마이크로프트를 핑계로 댈 수 밖에 없었다. 마이크로프트가 일부러 동생 옆에 붙여줄 만한 인물이 되어야 하다보니 자신이 전직 군의관이었다는 얘기까지 해버렸다. 허드슨 부인은 존의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기쁨으로 빛났다. 말그대로 번쩍번쩍 빛이 나는 것 같았다.
“의사선생님이라니! 어쩜! 정말 딱이네요. 역시 마이크로프트예요. 그 양반이 새침한 척 뒷짐 지고 있는 것 같아도 하나뿐인 동생을 어찌나 싸고 도는지. 조금만 솔직하게 굴면 셜록도 지금처럼 삐딱하게 굴진 않을 텐데 참.”
“어쩌겠습니까, 형제인 걸요.”
존은 저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이 응당 그럴 법한 것보다 훨씬 빈정거리는 것처럼 들려서 자기가 한 말에 자기가 놀랐다. 하지만 존의 말 밑에 깔린 비릿함 따위는 이 상냥한 노부인의 귀에는 닿지도 못하고 사라져버린 모양이다. 허드슨 부인은 실로 즐거운 듯이 웃었다.
“그래요, 정말이지요. 둘이 어쩜 그렇게 똑같은 지! 더없이 멀끔한 얼굴을 하고 있어도 둘이 서로를 대하는 방식을 보면 나이차가 무색하게 똑같은 어린애라니까요. 너무 닮은 형제는 사이가 나쁘기도 한 법이지요.”
“홈즈 씨는 분명 동생이 어렸을 때 돌봐주는 척 하며 젖병에다 자기 유전자를 섞여 먹였을 겁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렇게 안 닮은 얼굴을 하고서 그렇게 똑같은 행동만 하기도 쉽지 않을 테니까요.”
허드슨 부인은 존이 너무나 마음에 든 나머지, 저녁까지 차려줄 기세였다. 함께 살면서 셜록과 싸우게 되면 자기 집에 남는 방을 주겠다는 제의까지 했다. 존이 셜록과 함께 살게 된 진짜 이유를 모르고 그가 아무리 동거인이 마음에 안들어도 혼자서는 아무데도 갈 수 없는 처지인 것을 모르기에 할 수 있는 말이었지만 존은 그 깊은 호의에 의아한 마음마저 들었다. 허드슨 부인만큼 열렬하진 않아도 존은 언제나 타인의 호의를 쉽게 얻어내는 편이었다. 대체 사람들은 자신의 어떤 점을 보며 이렇게 쉽게, 빨리 마음을 놓는 걸까. 악마일수록 천사의 외향을 하고 나타나고 사기꾼은 교활할수록 성자의 얼굴을 한다. 아마도 자신은 자신이 생각해왔던 것보다 훨씬 ‘악’에 적합한 인간이었나보다.
“차 한잔 더 하시겠어요?”
“예, 부탁드립니다.”
“그건 안돼. 지나치게 위험하다.”
“하지만 존 왓슨이 형이 확신하고 내가 의심하는 것의 반의 반만큼이라도 위험한 인간이라면 그는 간교하기 짝이 없는 거짓말쟁이야. 어지간한 방법으로는 꼬리의 그림자도 잡을 수 없을 거야.”
“그래도 그를 너와 함께 베이커가에 둘 순 없어. 그 집에는 변변한 방범시설 하나 없지 않니?”
셜록은 코웃음을 쳤다.
“내 집 반경 50m 내를 CCTV 및 기타 감시시설의 밀도로는 영국을 넘어서 유럽 최고 수준으로 만들어놓으신 분의 입에서 들으니 더욱 각별하게 들리는 군.”
“아직까지는 제프 호프 사건 하나뿐이야. 이렇게 달려들 듯이 반응할 일이 아니야. 일부러 호랑이굴에 들어가는 거라 해도 이보다는 신중해야 해. 진짜 ‘모리어티’가 아직까지 살아있다고 해도, 아니면 그저 ‘모리어티’가 살아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려는 계략이라 해도 적들은 우리를 알고 있어. 우리가 이것보다는 영리하다고 생각할 거다.”
“그러니까 오히려 저들이 예상하는 대로 움직여줄 생각이야. 우리가 이렇게 빨리 움직이는 걸 보면 저쪽도 바보가 아닌 이상 우리가 일부러 장단을 맞춰주고 있다는 걸 알겠지.”
“.....더더욱 이해가 안가는 구나. 적도 다 아는 술수를 부리는 것치고는 네가 감수해야 하는 위험부담이 너무 크지 않니? 아까부터 넌 네가 존 왓슨을 완전히 통제할 수 있는 양 말하고 있는데 착각도 그런 착각이 없구나. 당장 그 작은 남자랑 1대1로 붙었을 때 제압하는 건 고사하고 온전히 이길 수 있다는 확신도 없는 주제에.”
아무리 불규칙하고 무모한 생활습관으로 자기 육신을 괴롭혀대도 이렇게 대놓고 육체적 능력치를 의심받는 것은 불쾌한 일이었다. 상대가 마이크로프트이기 때문에 더 그랬다.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발품 파는 일은 하기 싫다고 말하는 형에게 들을 말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 쪽이야 말로 minion들 없이는 14살짜리 애한테도 얻어터질 주제에!’ 사실 마이크로프트에게 갖다대기엔 영국의 14세 청소년들은 너무 위험했다. 머릿속으로 여드름 난 어린애에게 마구 얻어맞는 마이크로프트를 생각하며 히죽대고 있었지만 정작 그의 말에 제대로 된 반론을 할 수 없었던 것은 마이크로프트의 지적이 정곡을 찔렀기 때문이다. 셜록은 이성과는 달리 아직까지 존 왓슨에 대해서는 경계심을 지속적으로 품고 있기가 힘들었다. 아무리 기억 속의 첫만남을 반복 재생해봐도 그때 자신을 올려다보던 눈동자 안에 번지던 따뜻함을 착각한 것에 불과했다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처음 면회실에 앉아있던 모습을 보았을 때의 그 남자는, 그가 있는 부분만 채도를 따로 조절한 것처럼 희미했다. 풀기라고는 하나도 없던 얼굴이 자신을 보고, 자신이 누군지 알고, 자신과 말을 섞으면서 천천히 색을 되찾고 그 눈동자 속에 초점이 잡히고 빛이 머무는 광경은, 아마도 지금 자신이 회상하는 것만큼 극적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 변화가 셜록의 마음에 깊은 자국을 남겼다. 아무리 치밀하고 복잡한 계획 하에 이루어진 범죄라고 해도 방법을 알고 범인을 알아내고 나면 그냥 정리하고 보관해야 할 데이터에 불과했는데 사태를 해결하는데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하는 그 사소한 기억의 편린 하나가 전해질처럼 온 몸을 떠돌고 있었다. 셜록은 조금 과장해서 미칠 것 같은 심정이었고 이것을 해결하지 않고서는 제대로 된 조사나 추적에 나서지 못할 것 같았다. 존 왓슨이 거짓말쟁이라면 그를 만나는 내내 자신이 그걸 알아내지 못했을 리가 없다. 하지만 셜록 홈즈마저 속일 수 있는 거짓말쟁이라면, 존 왓슨이 눈동자 속의 온기까지 꾸며낼 수 있는 희대의 사기꾼이라면 그걸 확인하는 자리에 반드시 자신이 있어야만 한다. 셜록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무슨 말을 하더라도 그걸 자신의 형에게 납득시키는 것은 불가능할 거라는 걸 알았다. 그래서 그는 무작정 우기고 조르고 마이크로프트의 체중을 들먹이고 인내심을 시험해서 동생의 우격다짐에 진절머리가 난 마이크로프트로 하여금 너 좋을 대로 하라고 화를 내며 가버린 뒤, 동생의 기행을 막는 것보다는 이미 저질러진 일의 뒷수습을 하는 편이 그나마 상대적으로 편하다는 걸 상기하게 만들었다.
물론 마이크로프트는 조건을 걸었다. 조건을 걸지 않으면 마이크로프트가 아니다. 그는 존 왓슨과 함께 사는 것은 셜록이되, 그의 신병을 관리감독하는 것은 전적으로 자신의 몫임을 확고하게 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존 왓슨에게 고지하겠다고 했다. 즉, 아무리 한집에서 살아도 존 왓슨이 말을 들어야 할 상대는 셜록이 아니라 마이크로프트라는 뜻이었다. 그것까지 안된다고 할 명분은 도저히 찾을 수 없어서 셜록은 툴툴거리면서 승낙했다. 자기가 왜 툴툴거리는지도 모르면서.
셜록이 베이커가로 돌아왔을 때, 존은 허드슨 부인의 거실에서 부인과 함께 TV를 시청 중이었다. 이미 저녁 시간이 지나 부인이 만들어준 샌드위치로 끼니를 때웠는데 존으로서는 아무런 불만이 없었다. 그녀의 샌드위치는 비스킷 만큼이나 맛있었다.
“셜록! 약속을 해놓고 이렇게 오래 자리를 비우다니!”
셜록은 당황했다. 중요하지 않은 정보는 그냥 머리에서 지워버리는 건 하루 이틀일이 아니었지만 존 왓슨이 자기 집에 오는 날짜는 연예계 가쉽이나 수상의 이름처럼 하찮은 데이터가 아니었다. 셜록은 해본 적이 없어 익숙하지 않은 사과를 입 안으로 웅얼대면서 존을 2층을 이끌었다. 열쇠로 잠긴 문을 열고 존이 먼저 들어갈 수 있도록 몸을 비켰다. 존은 거실 안 풍경에 잠시 할 말을 잃고 멍하니 서있었다. 새삼 자신이 집을 잘 치우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아서 셜록은 헛기침을 하며 부산스럽게 소파와 탁자 위에 널려있는 날짜가 지난 신문들과 출력해놓은 병리학 논문 사본들을 치우기 시작했다. 치운다고 해봤자 한 장소에 있는 걸 다른 장소에 쌓아놓는 것에 불과한 행태였지만 존은 웃지도 않고 셜록이 하는 양을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했다. 셜록은 (그에 기준에) 중요하지 않지만 (보편적인 기준으로) 그냥 버리기엔 애매한 편지들을 모아 벽난로 위에 잭나이프를 꽂아 고정시키는 짓을 마지막으로 소위 ‘정리’라는 걸 마쳤고 존은 아까부터 알아차렸지만 그제야 손을 들어 벽난로 위에 있는 해골을 가리켰다.
“저기 해골이 있네요.”
“....한 가지 말해두자면 난 천치라도 알아볼 수 있는 명백한 관찰결과를 말로 반복해서 알려주는 걸 싫어합니다.”
존은 살짝 눈을 굴렸다. 셜록은 그 모습을 보며 밑도 끝도 없이 자기가 너무 성급하게 굴었다는 생각에 괴로워졌다.
“오케이, 그럼 말을 바꾸죠. 왜 해골이 벽난로 위에 있죠? 진짜 사람 두개골입니까?”
이제 셜록은 존의 질문에 성의있게 답해줘야겠다는 출처를 알 수 없는 강박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제 친굽니다. 여기서 제가 친구라면 함은...”
“아뇨, 됐습니다. 어차피 선택의 여지도 없는데 알고 싶지 않네요.”
“존, 위층에 있는 침실을 보겠어요? 볕도 아주 잘 들고 마음에 들 거예요.”
존과 반나절 동안 함께 있다보니 이 남자가 더욱 마음에 들어버린 허드슨 부인은 셜록이 무슨 기행으로 이 듬직한 전직 군의관을 쫓아버릴지 몰라서 두 사람을 따라 올라왔다. 부인이 생각하기에 존이 정 싫다고 가버리면 아무리 마이크로프트의 ‘주선’이 있었다해도 자유국가인 영국에서 뭘 어떻게 할 수 있는 건 아닐 것 같았다.
“감사합니다, 허드슨 부인.”
존은 순순히 부인의 뒤를 따라 위층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셜록은 어쩐지 지친 기분이 되어서 소파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존이 다시 거실로 내려왔다. 그 모습을 보고 셜록은 자리에서 용수철처럼 일어섰다. 셜록이 그러거나 말거나 셜록 앞에 선 존은 꽤 밝은 얼굴이었다. 침실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존은 한쪽 손을 앞으로 내밀었을 때까지만 해도 셜록은 대체 그 좁고 별 거 없는 침실의 어디가 마음에 들었을까를 궁리하느라 존이 내민 손을 멀뚱멀뚱 바라만 보았다. 허드슨 부인이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켜보는 보람도 없이 존은 민망함도 불쾌감도 없이 세워둔 빗자루처럼 가만히 있기만 하는 셜록에게 눈짓으로 자신의 손을 마주잡으란 신호를 보냈고 셜록이 채 손을 다 들어올리기도 전에 먼저 다가가 낚아채듯 악수를 했다. 그리고 더없이 상큼해서 오히려 불길하게 느껴지는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홈즈씨.”
존 왓슨은 확신했다. ‘나는 가정부로 이 집에 온 것이구나!’ 웃기게도 그 생각은 존에게 적지 않은 정신적 안도감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