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세번도 네번도 보지만 드라마는 한번 본 걸 두번 이상 본 적이 거의 없다. 아마도 밀도의 차이때문인듯. 그런데 셜록은 한편당 평균 5번씩 본 거 같다. 비록 처음부터 끝까지 한 자리에서 본 건 아니지만. 1시간 30분이라는 분량도 그렇고 셜록은 나에게 있어 드라마가 아니라 3부작 영화인듯.

그렇게 반복해서 보다보니 처음에는 걍 그렇구나 하고 넘겼던 장면들이 새삼 의미심장하게 다가올때가 있다. 가장 먼저 생각나는 예는 셜로기의 웃는 얼굴.

이거 우리가 처음으로 보게 되는 셜록의 스마일. 대외용 얼굴이란 어떤 것인지를 보여준다. 이게 얘의 디폴트 모드 스마일인듯.


"룸메이트가 될지도 모르는 사이끼리는 서로의 단점에 대해 알아둘 필요가 있지요"라고 되도 않는 애교(...)를 떨면서 지은 미소. 얼굴에 경련은 안일어나나 몰라...


진심이 아닌 웃음은 금방 티가 나고 기본적으로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표정을 지으려고 하지 않는 존 왓슨.1화에서만 해도 존은 참 잘 안웃는다. 웃음은 물론 기분이 안좋을때도표정에 그리 많은 변화가 없다. 셜록의 어색쩌는 사교용 미소를 본 존의 반응. 얘뭥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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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이 마이크로프트가 사건 정황 이야기해줄때마다 태클 거는 거 들으며 즐거워하는 셜록. 딱히 마이크로프트를 상대로 건 태클도 아닌데 아주 좋아죽는다. 어이구 이 셜초딩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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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은 왜 이때 웃었을까. 아마도 거의 말초적인 레벨의 신경반응이었던 것 같다. 즐거움보다는 흡족함이랄까. 아무튼 이때 씨익 하고 웃는데 내가 존이었으면 저 자식이 심심해서 미칠 지경이 되면 날 죽여놓고 완전범죄로 꾸미고 놀려고 하지 않을까 조낸 두려웠을텐데 우리의 용감한 브리티쉬 아미닥터 선생께서는 햄스터같은 외향에 그리즐리 베어의 대범함을 가지고 계신 듯 ㄷㄷㄷ;;



1. 친애하는 모양이 빌려준 서책의 내용에 미루어보아 스티븐 모팻과 마크 게이티스는 셜록과 마이크로프트 형제를 상류층, 최소한 중상층 출신의 자제들로 설정한 것이 틀림없다. 이 해석은 기존의 셜록 홈즈 팬덤이 가지고 있는 전통적인 관점과 다르지 않다. 셜로키언들은 셜록이 옥스포드 출신이냐 캐임브리지 출신이냐를 가지고 격론을 벌일 지언정 셜록이 저 두 대학 중 하나를 나왔으리라는 점에는 의심을 품지 않는 듯 보인다. 반면에 우리의 닥터 존 H. 왓슨에 대해서는 어떠한가. 마틴 피도의 저서 '셜록 홈즈의 세계'에 따르면  우리의 닥터 왓슨은 런던대학 출신이다. BBC 버전에서는 아예 대놓고 킹스칼리지 출신이라고 이력서에 박아주었다. 영국의 중산층들이 PC해지겠답시고 노동계급을 '공립학교 출신'이라고 부른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상, 19세기 존 H.왓슨이나 21세기 존 왓슨이나 노동계급 출신임은 거의 확실해보인다.

아, 한가지. 의사가 어째서 노동계급이냐고 되묻는 것은 영국에서는 의미없는 일이란다. 대부분의 사회적 계급이 경제적 능력이나 교육 수준에 의해 정해지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영국의 계급은 직업이나 재산과는 상관이 없다고 한다. 만약 그렇다면 21세기 존 왓슨은 19세기의 선조와는 달리 중상층 출신일 수도 있을 것인가? 존이 한번도 자신의 부모에 대해 하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으니 현재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다.


2. 중학생때부터 원작을 읽어왔지만 나는 셜록 홈즈가 상류층 출신일거라는 느낌을 받은 적이 없다. 지방에 근거를 둔 지주계급의 후예같기는 했지만 오히려 내가 홈즈의 집안에 대해 받은 인상은 경제적으로 궁핍하지는 않지만 더이상의 계급 상승을 포기해버린 중증층? 정도였다. 마이크로프트도 그렇고 사회적 출세나 경제적인 이득에 구애받지 않는 듯한 모습으로 보아 어려움 없이 자라기는 했지만 그래도 왕족이나 지체높은 귀족들을 상대할때 그가 보이는 살짝 냉소적이고 과장된 예의로 보아 계급에 아무런 의문을 품지 않을 만큼 윗자리에 있는 것은 아닌 걸로 보인다. 오히려 왕족이면 오오, 왕족이구나!, 대귀족이면 오, 대귀족이네? 하고 걍 그런가보다 하고 있는 건 왓슨 쪽이다. 어쩌면 이런 면에서 확실히 왓슨은 하층 계급스러울지도 모른다. 자신이 속해있는 계급에 대해 강렬하게 의식하고 있는 쪽은 언제나 어중간한 중산층 들이니까.


3. 만약 19세기 영국의 계급이 지금의 우리나라처럼 경제적 능력이나 (아주 조금 부풀려서;;) 문화적 혜택을 받은 정도에 따라 결정된다고 하면 나는 존 H.왓슨이야말로 몰락한 상류층 자제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우선 의가사제대한 뒤에 있는 대로 경마와 여흥에 돈을 쓰다가 돈이 떨어지기 시작한 이후에야 하숙집 룸메이트를 구하기 시작했다는 사실로 보아 왓슨의 경제관념이 무척 느슨하다는 걸 알 수 있다. 형의 유품인 시계를 보고서 셜록이 추리한 내용도 이러한 나의 짐작을 뒷받침한다. 왓슨은 어린 시절에는 무척 유복하게 자랐다가 대학에 진학하기 전부터 서서히 집안이 몰락하기 시작했을 것이고 (만약 왓슨이 대학생이었던 시절에도 집이 잘 살았다면 옥스포드나 케임브리지에 진학하지 않았을 이유가 없다.) 낭비벽이 심한데다 알콜중독이기도 했던 큰형이 집안을 물려받은 이후에는 확실하게 기울어서 둘째아들인 왓슨에게는 더더욱 떨어질 재산이 없었을 것이다. 그런 환경에서 탈출하기 위해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참전했을 수도 있고 아니면 그냥 그때 대부분의 청년들이 그랬듯이 별 생각없었을 지도 모른다. 어느 쪽이라고 해도 왓슨이 심하게 낙천적이고 거의 둔감할 정도로 관대한 사람이라는 점은 변함이 없는데 특히 자신의 절친한 친우와는 달리 여성에 대해 전반적으로 너그러운 점과 여성의 미모에 대한 거의 본능적인 감식안을 가지고 있다는 걸 생각해보면 이 사람이 어린 시절 전반적으로 가정 내에서 충분한 애정을 받으며 풍요롭게 성장한 사람이라는 걸 짐작할 수 있다. 게다가 왓슨이 찬양한 여성들의 미모는 결코 그 시대 모든 남성들에게 거부감없이 받아들여졌을 만큼 천편일률적이지 않다. 그는 키가 크고 당당한 체격의 기가 센 미인들에게 깊은 인상을 받았으며 그런 성격을 가진 경우, 태도나 행실에 제법 명백한 결함이 보인다해도 오히려 그들은 옹호하고 긍정적으로 묘사했다. 이런 바람직한 취향은 섬세한 감수성과 열린 마음이 바탕이 되지 않고서는 잉태되기 힘들다. 더더욱 이 사람의 평온했던 유년기에 대한 심증이 굳어진다.
 여성들에게 언제나 기사도적인 헌신을 바칠 준비를 하고 있는 바람에 홈즈보다 여성의 능력을 과소평가하는 실수를 범하기도 하지만 그건 오히려 홈즈가 그만큼 여성에게 요구하는 기준이 높다고 해석하는 것이 옳은 듯 하다.


4. 어딘가 비틀려있고 성격이 괴팍한 남자들은 자신들의 삐뚤어진 관점으로 인간세상 전반을 관찰하지만 그중 가장 먼저 여성에게 그 삐딱한 세계관을 투영한다. 성격이 삐뚤어지고 괴팍해졌다는 것 자체가 성장 과정에서 부모 내지는 가정 구성원과의 관계가 원활하지 못했다는 것을 반영한다고 해도 큰 논리적 비약은 아닐 것이다. 어설프게 프로이드적 분석법을 적용해보자면 '쯧쯧, 엄마랑 사이가 안좋았구나' 정도?  
 셜록 홈즈의 여성 혐오는 사실 프로이드의 '난 아직도 여자들이 뭘 생각하는 지 모르겠다'는 탄식과 비슷한 수준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이 사람이 근본적으로 여성, 즉 인간의 결점에 대해 너그럽지 못하다는 점을 확인해줄 만큼은 된다고 본다. 굳이 브로맨스를 적용시키지 않더라도 왓슨의 결혼을 두고 '그가 나에게 행한 유일한 배신' 운운하며 찡찡거리고 있는 걸 보면 왓슨이나 되니까 이 인간 곁에 붙어있지 평생 친구고 뭐고 없이 혼자서 늙어죽기 딱 좋은 인간형이다. 어쩌면 왓슨이나 되니까 이 인간이 곁에 붙여놓고 있었을 지도 모르겠다. 그 끝도 없는 인내심과 무덤덤함을 보면 정말 왓슨은 후생에 팬더로 환생했을 것이 틀림없다.  


 5. 음... 뭔가 더 할 말이 있었는데 적는 도중에 잊어버렸다. 웁스;

아 놔... 나 진짜 제목 못짓겠어 제목 미워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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