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세번도 네번도 보지만 드라마는 한번 본 걸 두번 이상 본 적이 거의 없다. 아마도 밀도의 차이때문인듯. 그런데 셜록은 한편당 평균 5번씩 본 거 같다. 비록 처음부터 끝까지 한 자리에서 본 건 아니지만. 1시간 30분이라는 분량도 그렇고 셜록은 나에게 있어 드라마가 아니라 3부작 영화인듯.
그렇게 반복해서 보다보니 처음에는 걍 그렇구나 하고 넘겼던 장면들이 새삼 의미심장하게 다가올때가 있다. 가장 먼저 생각나는 예는 셜로기의 웃는 얼굴.
이거 우리가 처음으로 보게 되는 셜록의 스마일. 대외용 얼굴이란 어떤 것인지를 보여준다. 이게 얘의 디폴트 모드 스마일인듯.
"룸메이트가 될지도 모르는 사이끼리는 서로의 단점에 대해 알아둘 필요가 있지요"라고 되도 않는 애교(...)를 떨면서 지은 미소. 얼굴에 경련은 안일어나나 몰라...
진심이 아닌 웃음은 금방 티가 나고 기본적으로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표정을 지으려고 하지 않는 존 왓슨.1화에서만 해도 존은 참 잘 안웃는다. 웃음은 물론 기분이 안좋을때도표정에 그리 많은 변화가 없다. 셜록의 어색쩌는 사교용 미소를 본 존의 반응. 얘뭥미?
존이 마이크로프트가 사건 정황 이야기해줄때마다 태클 거는 거 들으며 즐거워하는 셜록. 딱히 마이크로프트를 상대로 건 태클도 아닌데 아주 좋아죽는다. 어이구 이 셜초딩 ㅋㅋㅋ
셜록은 왜 이때 웃었을까. 아마도 거의 말초적인 레벨의 신경반응이었던 것 같다. 즐거움보다는 흡족함이랄까. 아무튼 이때 씨익 하고 웃는데 내가 존이었으면 저 자식이 심심해서 미칠 지경이 되면 날 죽여놓고 완전범죄로 꾸미고 놀려고 하지 않을까 조낸 두려웠을텐데 우리의 용감한 브리티쉬 아미닥터 선생께서는 햄스터같은 외향에 그리즐리 베어의 대범함을 가지고 계신 듯 ㄷㄷㄷ;;
1. 친애하는 모양이 빌려준 서책의 내용에 미루어보아 스티븐 모팻과 마크 게이티스는 셜록과 마이크로프트 형제를 상류층, 최소한 중상층 출신의 자제들로 설정한 것이 틀림없다. 이 해석은 기존의 셜록 홈즈 팬덤이 가지고 있는 전통적인 관점과 다르지 않다. 셜로키언들은 셜록이 옥스포드 출신이냐 캐임브리지 출신이냐를 가지고 격론을 벌일 지언정 셜록이 저 두 대학 중 하나를 나왔으리라는 점에는 의심을 품지 않는 듯 보인다. 반면에 우리의 닥터 존 H. 왓슨에 대해서는 어떠한가. 마틴 피도의 저서 '셜록 홈즈의 세계'에 따르면 우리의 닥터 왓슨은 런던대학 출신이다. BBC 버전에서는 아예 대놓고 킹스칼리지 출신이라고 이력서에 박아주었다. 영국의 중산층들이 PC해지겠답시고 노동계급을 '공립학교 출신'이라고 부른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상, 19세기 존 H.왓슨이나 21세기 존 왓슨이나 노동계급 출신임은 거의 확실해보인다.
아, 한가지. 의사가 어째서 노동계급이냐고 되묻는 것은 영국에서는 의미없는 일이란다. 대부분의 사회적 계급이 경제적 능력이나 교육 수준에 의해 정해지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영국의 계급은 직업이나 재산과는 상관이 없다고 한다. 만약 그렇다면 21세기 존 왓슨은 19세기의 선조와는 달리 중상층 출신일 수도 있을 것인가? 존이 한번도 자신의 부모에 대해 하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으니 현재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다.
2. 중학생때부터 원작을 읽어왔지만 나는 셜록 홈즈가 상류층 출신일거라는 느낌을 받은 적이 없다. 지방에 근거를 둔 지주계급의 후예같기는 했지만 오히려 내가 홈즈의 집안에 대해 받은 인상은 경제적으로 궁핍하지는 않지만 더이상의 계급 상승을 포기해버린 중증층? 정도였다. 마이크로프트도 그렇고 사회적 출세나 경제적인 이득에 구애받지 않는 듯한 모습으로 보아 어려움 없이 자라기는 했지만 그래도 왕족이나 지체높은 귀족들을 상대할때 그가 보이는 살짝 냉소적이고 과장된 예의로 보아 계급에 아무런 의문을 품지 않을 만큼 윗자리에 있는 것은 아닌 걸로 보인다. 오히려 왕족이면 오오, 왕족이구나!, 대귀족이면 오, 대귀족이네? 하고 걍 그런가보다 하고 있는 건 왓슨 쪽이다. 어쩌면 이런 면에서 확실히 왓슨은 하층 계급스러울지도 모른다. 자신이 속해있는 계급에 대해 강렬하게 의식하고 있는 쪽은 언제나 어중간한 중산층 들이니까.
3. 만약 19세기 영국의 계급이 지금의 우리나라처럼 경제적 능력이나 (아주 조금 부풀려서;;) 문화적 혜택을 받은 정도에 따라 결정된다고 하면 나는 존 H.왓슨이야말로 몰락한 상류층 자제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우선 의가사제대한 뒤에 있는 대로 경마와 여흥에 돈을 쓰다가 돈이 떨어지기 시작한 이후에야 하숙집 룸메이트를 구하기 시작했다는 사실로 보아 왓슨의 경제관념이 무척 느슨하다는 걸 알 수 있다. 형의 유품인 시계를 보고서 셜록이 추리한 내용도 이러한 나의 짐작을 뒷받침한다. 왓슨은 어린 시절에는 무척 유복하게 자랐다가 대학에 진학하기 전부터 서서히 집안이 몰락하기 시작했을 것이고 (만약 왓슨이 대학생이었던 시절에도 집이 잘 살았다면 옥스포드나 케임브리지에 진학하지 않았을 이유가 없다.) 낭비벽이 심한데다 알콜중독이기도 했던 큰형이 집안을 물려받은 이후에는 확실하게 기울어서 둘째아들인 왓슨에게는 더더욱 떨어질 재산이 없었을 것이다. 그런 환경에서 탈출하기 위해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참전했을 수도 있고 아니면 그냥 그때 대부분의 청년들이 그랬듯이 별 생각없었을 지도 모른다. 어느 쪽이라고 해도 왓슨이 심하게 낙천적이고 거의 둔감할 정도로 관대한 사람이라는 점은 변함이 없는데 특히 자신의 절친한 친우와는 달리 여성에 대해 전반적으로 너그러운 점과 여성의 미모에 대한 거의 본능적인 감식안을 가지고 있다는 걸 생각해보면 이 사람이 어린 시절 전반적으로 가정 내에서 충분한 애정을 받으며 풍요롭게 성장한 사람이라는 걸 짐작할 수 있다. 게다가 왓슨이 찬양한 여성들의 미모는 결코 그 시대 모든 남성들에게 거부감없이 받아들여졌을 만큼 천편일률적이지 않다. 그는 키가 크고 당당한 체격의 기가 센 미인들에게 깊은 인상을 받았으며 그런 성격을 가진 경우, 태도나 행실에 제법 명백한 결함이 보인다해도 오히려 그들은 옹호하고 긍정적으로 묘사했다. 이런 바람직한 취향은 섬세한 감수성과 열린 마음이 바탕이 되지 않고서는 잉태되기 힘들다. 더더욱 이 사람의 평온했던 유년기에 대한 심증이 굳어진다. 여성들에게 언제나 기사도적인 헌신을 바칠 준비를 하고 있는 바람에 홈즈보다 여성의 능력을 과소평가하는 실수를 범하기도 하지만 그건 오히려 홈즈가 그만큼 여성에게 요구하는 기준이 높다고 해석하는 것이 옳은 듯 하다.
4. 어딘가 비틀려있고 성격이 괴팍한 남자들은 자신들의 삐뚤어진 관점으로 인간세상 전반을 관찰하지만 그중 가장 먼저 여성에게 그 삐딱한 세계관을 투영한다. 성격이 삐뚤어지고 괴팍해졌다는 것 자체가 성장 과정에서 부모 내지는 가정 구성원과의 관계가 원활하지 못했다는 것을 반영한다고 해도 큰 논리적 비약은 아닐 것이다. 어설프게 프로이드적 분석법을 적용해보자면 '쯧쯧, 엄마랑 사이가 안좋았구나' 정도? 셜록 홈즈의 여성 혐오는 사실 프로이드의 '난 아직도 여자들이 뭘 생각하는 지 모르겠다'는 탄식과 비슷한 수준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이 사람이 근본적으로 여성, 즉 인간의 결점에 대해 너그럽지 못하다는 점을 확인해줄 만큼은 된다고 본다. 굳이 브로맨스를 적용시키지 않더라도 왓슨의 결혼을 두고 '그가 나에게 행한 유일한 배신' 운운하며 찡찡거리고 있는 걸 보면 왓슨이나 되니까 이 인간 곁에 붙어있지 평생 친구고 뭐고 없이 혼자서 늙어죽기 딱 좋은 인간형이다. 어쩌면 왓슨이나 되니까 이 인간이 곁에 붙여놓고 있었을 지도 모르겠다. 그 끝도 없는 인내심과 무덤덤함을 보면 정말 왓슨은 후생에 팬더로 환생했을 것이 틀림없다.
6. 그러니까 이것은 양자택일이다. 마이크로프트와의 관계를 끊고서 계속 올리버 레드브릿지에 대한 진실을 추구하느냐, 아니면 존의 말대로 레드브릿지에 대한 일은 포기하고 잊어버리느냐.
후자는 말도 안된다. 그런 것이 가능할 리가 없다. 언제까지고 발바닥에 난 티눈처럼 거슬릴 것이 뻔하다. 셜록은 고집스럽게 우겼다. 마이크로프트는 결코 레드브릿지와 같지 않아. 내가 레드브릿지에 대해 알고 싶어하는 것과 존이 마이크로프트를 견디지 못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고.
나는 네가 레드브릿지에 대해 생각하는 것처럼 마이크로프트에 대해 생각하지 않아. 우리 둘은 그런 애틋한 감정따위로 연결된 사이가 아니란 말이야.
그 말을 존의 앞에서 할 수 있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그래봤자 존의 마음이 변하지는 않았겠지만. 셜록이 이렇게 고집스럽게 버티는 까닭은 자존심 때문이었다. 유치한 어린아이의 질투심. 아무리 관대하게 생각하려고 해도 결국 본질은 '나는 너 밖에 친구가 없는데 왜 너는 쟤랑도 놀고 얘랑도 놀아?'에 불과한 마음.
셜록은 파가니니의 24번 카프리스를 신나게 켜다가 갑자기 치밀어오르는 울화에 조심성없게 바이올린을 맞은 편 소파 위로 던져버렸다. 셜록 본인도 그걸 모르지 않았다. '당신이 새로 사귄 애인은 사실 게이예요'라고 미리 알려주는 것을 친절이라고 생각할 만큼 세간의 상식과는 동떨어진 사고방식의 소유자이긴 해도 자신의 감정이라고 해서 유치함이 유치하지 않은 다른 것으로 바뀌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할 줄은 알았다.
셜록을 지루하게 만들기로 작심한 마이크로프트의 의뢰답게 그가 맡긴 사건은 정말로 '발품'을 팔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예전과는 달리 두둑하게 딸려온 수표가 셜록의 짜증을 조금 가라앉혀준 것은 그 위의 쓰여진 여섯자리의 숫자가 셜록을 얼떨떨하게 만들 정도로 존을 기쁘게 했기 때문이었다.
"셜록! 이번에야말로 전자렌지 두 개 사자! 하나는 네 실험용, 하나는 정말로 음식만 집어넣는 걸로!" "........." "생각같아서는 냉장고도 하나 더 사고 싶은데 그건 놓을 자리가 없겠지."
희색이 만연한 얼굴로 전자제품 카탈로그를 뒤지는 존의 옆모습을 바라보는 일은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셜록은 조금 기묘한 기분이 되었다. 지금 그의 눈앞에 있는 사람은 존 왓슨이다. 세상에서 그가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맨앞장에서 맨뒷장까지 단 한글자도 빠뜨리지 않고 모두 알고 있는 내용의 이야기책이 여전히 재미있게 느껴질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 셜록의 앞에 앉아서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카탈로그를 뒤지는 존 왓슨은 그가 아는 존 왓슨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은 완벽한 존 왓슨 - 덜 완벽한 존 왓슨도 있다. 예를 들면 사라 소여랑 만나고 있을 때의 존 왓슨을 셜록은 알지 못한다. 그러니까 그때의 존은 덜 완벽한 존이다. - 이다. 그의 얼굴에 새겨진 주름 하나, 돋아난 솜털 하나도 놓치지 않고 몇번이나 주의깊게 관찰해도 숨겨진 신비나 새삼스럽게 깨닫게 되는 새로운 면모같은 것은 없다. 못마땅할때마다 눈썹이 찡그려지는 모양이며, 마음에 드는 물건이 생각보다 비싸서 곤란해할때마다 입매를 움직이는 방식이며 셜록은 모두 알고 있었다. 그런 작은 단서들은 두 번 생각할 필요도 없이 마치 확성기에 대고 외치는 것처럼 셜록에게 존이 어떤 기분인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지 알려주었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거기서부터 이미 뭔가가 이상하다. 그렇게 뻔한 사실을, 셜록은 늘 관찰했고 그때마다 번번히 깨달았고 그 당연한 사실 앞에 항상 흐뭇해했다. 그 중 몇번은 존에게 알려주어 사기꾼 독심술사마냥 그를 깜짝 놀래키는 재미를 누려보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셜록만의 은밀한 즐거움으로 남았다. 존의 유쾌한 리액션이 없었다고 해도 셜록은 존의 머릿속을 들여다보기를 멈추지 않았을 것이다. 설령 존 왓슨의 사고방식이 진부하기 그지 없으며 그의 세계를 움직이는 원칙이란 기껏해야 보통 사람들이 상식이라 부르는 경험의 졸렬한 총체에 불과하다해도 셜록에게 존 왓슨은 언제나 관찰하여 속을 알아내기를 원하는 대상이었을 것이다. (물론 존은 그런 부류의 사람이 아니었으니 이 가정은 무의미할 수도 있다)
그러니까 올리버 레드브릿지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존 왓슨만 거기서 예외가 되어야 한다는 건 말도 안되는 일이다. 셜록은 다시 한번 자신의 어린아이같은 고집을 공고히 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할때마다 나오는 결론은 매번 똑같았다. 역시 마이크로프트의 말 따위는 듣는 게 아니었다.
타인에게 호의를 품는다는 것 자체가 너무도 희귀한 일이었기에 지금 자기가 느끼는 감정이 단순히 친한 친구에 대한 독점욕인지 연정을 품은 상대의 옛 연인에 대한 질투인지도 구분하지 못한 채 방황하는 동생을 바라보는 마이크로프트의 마음은 복잡했다. 형제라는 진부하며 고리타분하기 짝이 없는 이름으로 엮이지 않아도 마이크로프트와 셜록은 세상에 단 둘 뿐이었다. 같은 눈으로 세상을 보고 상대가 어떤 식으로 이 망막에 비치는 세상을 해석하는지 모조리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당연한 일이다. 어린아이에게 7살 차이는 어마어마한 간격이다. 보통의 부모 답게 자식을 사랑할 줄만 알았지, 자식이 어떤 유형의 인간인지 주의깊게 살펴볼 줄 모르는 부모님의 무지어린 묵인 하에 마이크로프트는 7살 연하의 남동생에게서 자신도 공유하고 있는 자질을 발견하자마자 그를 철저하게 자신의 취향에 맞춰 훈육했다. '내가 바라보는 세상이 어떤 것인지 아는 사람은 너 뿐이고 네가 바라보는 세상이 어떤 것인지 아는 사람 또한 나 뿐이다.' 커가면서 형의 양육방식을 일방적인 간섭이라 여기고 뼈아픈 반항을 일삼을 때조차도 셜록은 그 대전제만큼은 결코 부정하지 않았다. 그 누구보다 셜록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는 것이다. 그와 그의 형은 세상에서 오직 단 두 개체만이 살아남은 종(種)임을. 아니, 살아남았다기보다는 애초에 그 둘만 태어났다고 표현하는 것이 옳다. 이제 그 둘이 죽으면 그들이 속한 종은 그 어디에도 기록되지 못한 채 역사 속으로 사라져 갈 것이다. 어렸을 때의 맹목적인 순종을 모조리 보상이라도 하려는 셈인지, 셜록은 마이크로프트만 보면 배고픈 늑대처럼 으르렁거렸다. 가끔은 꽤 가슴이 뜨끔하다는 것을 부인하지 못했다. 배고픈 맹수가 으레 그렇듯이 셜록은 종종 잔인했고 필요 이상 냉혹했다. 사랑받는 자의 교만함인지 마이크로프트의 면전에 대놓고 그가 자신에게 갖는 집착을 비웃은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 뿐이었다. 두 형제의 세계는 실로 원처럼 닫혀있었고 조금의 이지러짐도 없이 완벽했다. 이 완벽한 상호이해의 세계에 처음으로 일어났던 균열을 마이크로프트는 마치 어제 일처럼 떠올릴 수 있었다.
그날, 마이크로프트는 동생을 방문할 타이밍을 잘 잡았다. 막 사건을 끝냈을 때라 수수께끼를 해결할 당시의 카타르시스가 아직 채 가시지 않은 상태에, 이젠 모든 일이 끝났다는 허탈감 섞인 해방감이 겹쳐져서 셜록은 제법 너그러워져 있었다. 존의 표현을 빌리자면 '배부른 고양이처럼 소파 위에 늘어져'있었다. 어쨌거나 셜록은 오랜만에 찾아온 형에게 웬일로 그리 까탈스럽게 굴지 않았다. 은근히 말도 받아주고 심지어 다이어트 진행과정 말고 다른 안부도 물었다. 어린애도 아니고 하루가 다르게 자라더니 자기가 하라는 건 모조리 피해가고 하지 말라는 짓은 골라서 하는 동생을 보며 가슴 아파할 만큼의 감수성은 남아있지 않았지만 그래도 마이크로프트로서는 흐뭇한 기분을 감추기가 힘들었다. 무언가 잘못됐다고, 어긋났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은 존이 한참동안 즐겁게 떠들다가 갑자기 차를 사러 나가겠다고 일어섰을 때였다. 순식간에 점퍼의 지퍼를 올리고 현관앞으로 가는 존을 보며 셜록은 순간적으로 마이크로프트의 앞이라는 것도 잊고 날카로움을 감추지 못한 목소리로 외쳤다. '존? 어딜 가는 거야?' 존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얼굴로 셜록을 바라보았다. '오늘 아침부터 3시간마다 한번씩은 말했던 것 같은데. 코르나로 할로윈 한정품이 오늘 저녁에 풀리니까 나중에 사러 갈건데 가는 김에 네 것도 사다줄까, 라고 몇번이나 물었잖아.' 그러자 10살 이후로는 마이크로프트조차 본 적 없는 표정으로 셜록이 삐죽거리기 시작했다. '유치하기는, 지금 나이가 몇인데 할로윈 한정품같은 걸 좋아하는 거야?' '사라의 취향이긴 해도 나도 좋아하거든? 아무튼 넌 혼자 노숙하게 웨지우드나 마시던지. 갔다 온다.'
그런 존의 뒷모습을 향해 셜록이 무언가 말하려다가 애써 삼켰다는 것을 마이크로프트는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자신이 앞에 있는 데도 그런 기색을 숨기지 못할 정도로 자제력을 잃었다는 사실도. 먹던 사탕을 빼긴 아이가 그걸 다시 내놓으라고 떼를 쓰지 못하는 건 그 사탕이 원래 자기 것이 아님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어금니를 한번 꽉 깨물더니 마이크로프트를 향해 다시 얼굴을 돌렸을때는 완벽하게 평소의 모습이었다. 고개가 돌아오는 그 짧은 시간 동안 셜록은 가면을 뒤집어쓴 것처럼 무표정해져서는 어떻게든 형의 심사를 뒤틀어보고 싶어서 열성을 다해 던지던 비아냥거림조차 치워버리고 침묵을 지켰다. 형을 향해서도 뭐라고 할 말이 있었던 듯 했는데 그것도 그냥 목구멍 아래로 밀어버렸다. 하고 싶은 말이 없는데 분위기가 어색해질까봐 애써 화제를 생각해내는 세심함 따위는 원래부터 없고 설령 있다고 해도 마이크로프트에게 그런 배려를 해줄 셜록이 아니다. 받을 만한 상대도 아닐 것이다. 셜록은 마이크로프트를 앞에다 앉혀놓은 채 번민에 빠졌다. 불안하게 흔들리는 아이스블루의 눈동자가 그가 지금 생각에 잠겨있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정리하고 있는 중임을 보여주었다. '아니, 정리가 아니겠지.' 마이크로프트는 정정했다. 셜록은 감정을 '정리'하지 않는다. 셜록은 감정을 '합리화'하거나 '이지화'하여 마음의 움직임을 재채기나 간지러움처럼 별 다른 의미를 가지지 못하는 사소한 반응으로 격하시킨 뒤 '처리'해버렸다. 그 크고 무시무시한 분쇄기에 걸려 살아남은 감정이 여지껏 없었다. 자기 때문에 본의 아니게 존경했던 아버지의 어두운 과거를 알게 되어 오스트레일리아로 이민가버린 빅터 트레버에 대한 감정도, 난데없이 말레이시아로 발령받아 온갖 불평불만을 늘어놓으며 두달만에 돌아올 것처럼 굴더니 가자마자 순식간에 적응해버린 걸로 모자라 아예 눌러앉은 머즈그레이브에 대한 감정도 그렇게 처리되었다.
마이크로프트는 다시 한번 위기가 찾아왔다고 생각했다. 알아서 떠나버린 빅터 트레버와는 달리 머즈그레이브의 경우에는 약간 손을 써야 했지만 결과적으로 오히려 바람직하다고 말할 수 있었다. 그 허여멀건한 얼굴을 한 냉소적인 독신남의 마음을 뒤흔들 여자가 지구 반대편에 있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마이크로프트는 존이 제 2의 빅터 트레버가 될 지, 아니면 머즈그레이브가 될 지 궁금해졌다. 희망사항이라면 그 사라라는 여의사와 잘 되어서 자연스럽게 셜록과 멀어지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빅터 트레버처럼 씁쓸한 뒷맛을 남기고 헤어질 필요는 없다. 오히려 다 같이 런던에 살면서 길거리를 지나가다가 마주치기도 하고 한달에 한번은 만나 술자리나 식사도 함께 하는 평범한 친구가 되어주면 좋겠다. 그렇다면 셜록도 마침내 깨닫게 될 것이다. 그러한 평범함이 자신들에게는 얼마나 무의미하고 무가치한 것인지. 빅터 트레버도 머즈그레이브도 존 왓슨도 모두 좋은 사람들이다. 좋은 친구가 되어줄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어느 누가 다가와도 소용없다는 것을, 굳이 문제라고 한다면 셜록 자신이 문제라는 것을 확실히 깨달아주었으면 했다. 그리고 마지막에 돌아올 곳은 결국 형의, 유일한 동족의 곁 뿐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주었으면 좋겠다. 납득할 필요도 없고 당장 돌아오라는 것도 아니다. 그저 형이 옳았다고, 형이 나를 양육한 방식은 그 어떤 가능성도 잘라내거나 변형시킨 것이 아니었음을, 형이 아니었더라도 나는 나일 수 밖에 없었을 거라는 걸 셜록이 인정했으면 좋겠다고 바랄 뿐이었다.
마이크로프트는 존이 돌아오기 전에 떠났다. 가게 앞에서 사라랑 만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셜록의 생각과는 달리 존은 1시간도 채 되기 전에 돌아왔다. 손에 들린 쇼핑백은 두 개였다. 그 순간, 뻔히 알고 있는 것을 물어보는 행동을 늘 우습게 여겼음에도 불구하고 셜록은 소리내어 물어보고자 하는 충동을 참지 못했다. '사라랑 안만나고 혼자 갔다 온 모양이지? 난 만날 거라고 생각했는데.' 최대한 아무렇지 않게 물어보는 것만이 셜록이 발휘한 최대한의 자제심이었다. '아, 만나려고 했는데." 무릎 위에 놓여있던 셜록의 손이 멈칫 했다. '갑자기 응급환자가 들이닥치는 바람에... 사라가 너무 미안해하는 바람에 오히려 내쪽에서 민망해졌지 뭐야. 어차피 나도 이거 좋아하는데.' '.....사라랑 만나기 전에는 마셔본 적도 없으면서.' '그러니까 오히려 고마워해야지. 좋은 제품을 소개해줬잖아. 너한텐 조금 지나치게 달콤할지도 모르겠지만 내 취향엔 맞았어. 호박 말고 당근 케잌도 있길래 그것도 사왔는데 먹을래?' '....아냐, 됐어.'
그날 밤, 셜록은 잠을 설쳤다.
고독이 망치처럼 그를 내리쳤다. 소외감은 익숙했다. 사리분별을 할 수 있는 나이가 되자마자 셜록은 자신이 본질적으로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를 이해해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인 마이크로프트는 7년 먼저 태어나 이 세상을 살아보았다는 이점을 살려 그 이질성을 더욱 부추기는 짓 밖에 하지 않았다. 그러니 셜록에게 고립감이란 차라리 공기같아서 사라지면 오히려 불편한 것이다. 존은 함께 사는 사람을 외롭게 만드는 사람이 아니었지만 그런 존과 함께 하루 종일 붙어있을때조차 셜록은 세상을 가득 메우고 있는 이 수많은 사람들에 비하면 자신은 얼마나 이질적인 존재인가를 실감하는 것을 그만둘 수는 없었다. 그것은 늘 그래왔다. 본디 그러한 것이니 지극히 자연스럽고 새삼 불평할 거리가 될 수 없다. 하지만 지금 침대에 누워 어둠 속에서 보이지 않는 천장을 노려보고 있는 셜록은 고독으로 인해 가슴이 쓰렸다. 고통을 느꼈다. 그는 불연듯 마이크로프트조차 자신의 관점에서 본 세상과 똑같은 세상을 알지 못할 거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설령 세상 전부를 스캔한 듯이 똑같은 형상으로 눈에 담을 수 있는 형제라 해도 그 끔찍한 동일성은 단 한 지점에서 깨어져 붕괴할 것이다.
존. 존 왓슨. 그의 형은 결코 그가 바라보는 것처럼 존을 바라보지 않을 것이다. 입수하는 정보는 동일하고 그에 대한 해석도 거진 유사할 것이다. 다른 것은 이성과 사고의 영역이 아니라 감정이 주관하는 부분이다. 여러모로 뛰어나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이 평범한 사람에 불과한 존 왓슨의 머릿속을 들여다보는 일이 어째서 셜록에게 그토록 중요하고 큰 의미를 가지는 지 마이크로프트는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아니, 이해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것은 1 더하기 1이 2가 되는 이치를 이해하는 것과 같은 수준이다. '사고'의 수준에 머물러 있는 이해는 감정이 지배하는 곳에서는 오히려 반역에 가깝다. 마이크로프트는 셜록이 어째서 존이 불쾌할 때 보이는 표정과 당혹스러울 때 보이는 표정이 매우 유사하다는 사실에 흥미를 느끼는 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왜 셜록이 낯선 기계만 보면 0.5초간 얼어붙는 존의 모습을 옆에나 뒤에서 바라보며 유쾌함을 느끼는 지, 존이 기계와 상성이 좋지 않은 데는 타당한 이유가 있다는 걸 알면서도 왜 자꾸만 그걸 빌미로 존을 놀리고 싶어지는 것인지, 왜 그런 놀림에 존이 화를 내거나 흥분해서 대꾸하면 즐겁지만 가만히 듣고 넘여버리면 쓸데없이 불안해지는 지에 대해 이해해줄 수 있는 존재는 세상에 없다.
이해하는 이는 아무도 없건만 이런 소리를 늘어놓으면 난데없이 셜록이 가지고 있는 '감정'이 무엇인지 알아서 정의해주려고 나서는 이들은 넘쳐날 것이다. 그들은 점잖게 웃으며 이렇게 말할 것이다. '바로 그것이 감정이 이성에 미치는 영향력이지요. 흥을 깨기는 싫지만 그것은 당신의 마음이 뇌를 속이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객관이란 이상에 가까웠던 당신의 주관이 기어코 별볼일 없이 그저 그런 평범한 '주관'들 중 하나로 격하되는 과정에 불과합니다.'
바로 그 점이 셜록이 결정적으로 자신이 느낀 고독감을 '쾌'와 '불쾌' 중 불쾌의 영역으로 밀어넣어버리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마음이란 것이 접기로 마음 먹었다 하여 바로 접어지는 것이라면 애초부터 감정에게 이성을 흐리게 만드는 힘이 주어졌을 리가 없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잘되지 않았다. 그리고 셜록은 자신이 하고자 마음 먹은 일이 잘 되지 않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다. 가장 못마땅한 것은 자신의 능력부족이었지만 (셜록은 무려 그 이유가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스스로에게 내는 짜증에는 한계가 있다. 셜록은 그 짜증의 여분을 존에게 퍼부었다. 만약 존이 셜록의 그런 행동에 대해 느끼는 불합리함과 노여움을 적극적으로 표현했다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졌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존은 셜록이 퍼붓는 짜증의 4할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게 넘겨버렸고 3할은 꾹 눌러참았고 나머지 3할은 사라와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셜록 흉을 보는 것으로 풀어버렸다. 결과적으로 셜록이 존에게 낸 짜증은 전혀 셜록에게 되돌아오지 않았다.
무플이 악플보다 무섭다는 사례는 셜록의 정신상태에도 적용되었다. 반응해주지 않는 상대에게 계속 똑같은 자극을 주는 것만큼 우스워보이는 일은 없다. 셜록의 짜증은 불안감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사람은 누구나 불안하면 바보같은 짓을 하기 마련이다. 차라리 대놓고 도발하는 편이 나았을 텐데. 그런 동생에게 마이크로프트는 넌저시 미끼를 던졌다. 어째서 셜록은 늦게 일어나는 그를 위해 꼬박꼬박 아침을 차려주고 출근하는 존의 배려를 애정과 관심의 증거라고 여기지 못했을까. 사실은 그 일관성이야말로 존이 셜록을 중요하게 여기고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가장 큰 증거였는데. 매일마다 차려나오는 똑같은 메뉴의 아침식사란 셜록이 겪고 있는 격렬한 내적갈등의 위로가 되기에는 너무 소박했던 모양이다. 셜록은 본디 일상의 지루함과 반복성에 대해 감사할 줄 모르는 인간이었으니까. 자신이 똑똑하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목숨을 걸 수 있는 남자의 어리석음이 여기서 실로 찬란하게 빛을 발했다. 셜록은 그저 존이 어떻게 반응하나 보고 싶은 마음에 마이크로프트와의 관계를, 그것도 이미 종결된 지 오래인 관계를 끌어들였다. 보기좋게 마이크로프트의 덫에 넘어간 것이다.
그리고 겨우 잊고 지냈던 상처를 가차없이 까발려진 존만이 남았다. 셜록의 무례함과 게으름은 사라와 함께 웃고 이야기하며 꺼낼 수 있는 주제였다. 하지만 셜록이 근친상간자란 사실은 그 누구에게도 토로할 수 없는 일이었고 그로 인해 존이 느끼는 거부감과 혐오감 또한 남들에게 위로받을 수 있는 감정이 아니었다. 존의 내면에서 염증을 일으키던 셜록과 마이크로프트의 관계는 올리버 레드브릿지에 대한 기억과 만나면서 마침내 곪기 시작했다. 존은 이 형제가 범하고 있는 금기 자체에 짓눌린 나머지 그런 일은 옳지 않으니 그만 두라는 말조차 할 수 없었다. 왜 사람을 죽이면 안되는 물음에 금방 답이 나오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도덕이나 윤리에는 이유가 없다. 특별한 이유 없이도 당위로 여겨지는 명제가 대놓고 뒤집이면 사람들은 순간적으로 공황상태가 된다. 거기 더해서 존에게는 그 공황상태가 좀 더 오래 지속될 만한 원인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의 존으로서는 그 원인에 대해서 무작정 덮어놓고 생각하지 않는 것 외에 달리 대처할 수단을 갖고 있지 않았다. 세월이 해결해줄 것이다. 스스로도 채 납득하지 못하는 일반적인 진리에 기대어 그저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그저 기다릴 수 밖에 없는 것은 사실이었으나 존의 일상은 그런 표현이 흔히 불러일으킬만한 수동적인 느낌과는 거리가 멀었다. 어쨌거나 존은 서바이버다. 서바이버에겐 서바이버만의 비책이 있다. 아직 오지 않은 먼 미래에 대한 가느다란 희망에서 그의 주의를 돌릴 수 있는 것들은 찾으려고 노력만 한다면 참으로 많았다. 우선 마이크로프트에 대한 것만 생각하지 않을 수 있다면 셜록은 훌륭한 오락거리(distraction)였다. 그가 아니었다면 존이 무슨 수로 새로 배달되어온 전자렌지 하나에 이렇게 큰 기쁨을 맛볼 수 있었겠는가. 냉장고에 식은 라자냐와 함께 들어가 있는 사람의 머리는 스트레스 발생요인 외에 아무것도 아니었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자칫 잘못했다간 여지없이 우울의 늪으로 빠져버릴 것 같은 존의 정신을 늪 바깥쪽으로 후려치는 일격의 역할을 한다고 볼 수도 있었다.
셜록으로 인한 것 뿐만 아니라 셜록 자체도 존에게는 끝없는 자극의 행진이었다. 그의 어린애같은 성질을 참아주고 돌봐주는 과정에서 셜록만이 지닌 놀라운 지성을 엿보며 감탄할 수도 있고 그 원대한 지성과 유치하기 짝이 없는 감성체계가 공존하고 있는 정신이 가진 역동성을 관찰하며 영화를 보는 것 같은 기분을 맛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존은 '의사'라는 직업이 말해주듯 지식인보다는 기술인에 가까운 성향을 가진 사람이었기에 셜록의 정신을 고찰하는 두뇌활동보다는 다른 것에서 더 큰 위안을 얻었다.
셜록을 보살펴주는 일은 존에게 있어 삶의 지지대와 같았다. 그것은 혼자서는 살아갈 능력이 없는 어린아이나 동물을 돌봐주는 것과 비슷한 경험이었다. 이쪽에서 일방적으로 돌봐준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보살핌을 받는 쪽이 아니라 해주는 쪽에게 더 큰 이득으로 돌아오는 행위들 말이다. 식사는 했는지, 지루하다고 불법적인 향정신성 약물에 의존하지는 않는지, 방은 제대로 치우고 사는 지, 세탁소에 맡겨두었던 세탁물을 찾아왔는지 꼬박꼬박 체크하고 간섭하고 제대로 하고 있지 않으면 잔소리를 하는 일들은 존에게 전쟁이 없이도 이 땅에 제대로 발을 디디고 사는 느낌을 갖게 해주었다. 마침내 셜록이 단 한번의 잔소리만으로 밖에 나갔다가 우유를 사오게 되었을 때, 존이 달리 말하지 않아도 아침에 일어나 씻자마자 식탁 앞에 앉아 존이 차려준 식사를 먹기 시작했을 때 존은 바로 이런 것이 삶을 지탱하는 사소한 행복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자마자 손발이 오그라들 것 같은 기분을 느끼기는 했지만.
그리고 사라가 있었다. 똑똑하고 친절하고 용감하며 다정하다. 함께 있으면 즐겁고 따뜻한 기분이 든다. 셜록과 함께 하며 느끼는 즐거움이 흥분감을 동반한 역동적인 것이라면 사라와 함께 있을 때의 즐거움은 나른하고 편안했다. 사라는 오래된 정원에 드리워진 익숙한 햇살처럼 아름다웠고 커서 다시 읽게 된 옛날 이야기처럼 재미있었다.
밤마다 되뇌이는 '이제 곧 괜찮아 질거야'라는 혼잣말에 드디어 신빙성이 생기기 시작했다. 마이크로프트는 더이상 베이커가로 찾아오지 않았다. 머리가 알고 있는 사실이 여전히 부지깽이로 화로를 들쑤시듯 존의 속을 뒤집어놓았고 두 번 다시 마이크로프트를 만나고 싶지 않은 마음도 여전했지만 그래도 존은 괜찮았다. 앞으로도 괜찮을 거라 믿었다.
꺼지기 시작하는 불씨에 산소를 공급한 쪽은 셜록이었다. 언제나 셜록이다. 혼란을 종결하기 위해 분란을 일으키며 자기가 회복한 질서를 미워하는 남자답게 셜록은 앞으로 나아갈때와 뒤로 물러설때를 구분하지 못했다. 몇번 밀어봤는데도 열리지 않는다면 한번쯤은 당겨보기도 해야 할텐데 셜록은 그저 밀기만 했다. 죽어라 밀어서 문이 열리는 대신 부서질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