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BBC가 원작 존 왓슨에게서 군인으로서의 면모를 좀 더 강조해서 존을 만들었다면 CBS는 외과의로서의 성격을 강조해서 조안을 만들었죠. 사실 강조고 나발이고 군인 쪽은 걍 떼내서 버렸다고 하는 편이 맞습니다만 ㅋㅋㅋ 영안실에 불법침입해서는 셜록이 조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시신을 해부하려고 하는데 서툴게 메스질하는 꼬라지를 못참고 결국 자기가 나서버리는 그런 거 꽤 귀여워요. 설정 자체가 PTSD가 존이 아니라 셜록에게 붙어있는 형국이니까 뭐 ㅋㅋ 정말 가끔 읽은 적 있는 고유명사가 불쑥불쑥 튀어 나오는 거 말고는 원작을 영리하게 요리했다는 느낌은 전혀 없는 엘리멘트리이지만 셜록과 조안의 동료 케미만큼은 꽤 봐줄만 합니다. 무엇보다 여기 셜록은 조안이 안된다고 하면 정말 안함. 귀엽긴 귀여움. 게다가 이번엔 마이크로프트까지 나왔음. 얘기 심심하고 BBC 셜록에 비하면 정말 셜록 홈즈 프랜차이즈에 숟가락만 얹는 느낌이긴 한데 그래도 계속 볼 듯. 심심한데 재미있음. 그런 점에서는 전혀 원작과 닮지 않은 주제에 한바퀴 삥 돌아서 원작 냄새남. 솔직히 BBC 셜록은 압축 엑기스라 시즌 하나씩 끝날때마다 멘붕이고 원작과 달리 읽고 나서 깔끔한 기분이 안든단 말이야. 유독 2시즌이 더 그랬음. 이게 다 아이린 때문이다. ㅗㅗㅗㅗㅗ 


2. 

'왓슨, 여기는 뚱땡이, 뚱땡이, 여기는 왓슨.'

'뚱땡이? 난 꽤 날씬해졌는데.'

'랩밴드?'

'운동이다.'

'운동은 에너지와 야심을 필요로 하는데 넌 둘 다 없잖아.'

(이 부분을 원작에서 읽었을 땐 그 평가가 자못 모욕적일 수 있다는 걸 전혀 의식 못했는데 ㅋㅋㅋ)


3. 예전에 어떤 원작 팬이 BBC 버전을 팬으로서 용서할 수 없다며 자기는 홈즈가 신사라서 좋아했지 이런 소시오패스는 모른다고 말하는 걸 들은 적 있었지요. 모두가 가슴에 자기 버전 셜록 홈즈 하나쯤은 품고 있는 거지 말입니다. 헌데 요새 제가 주석 달린 셜록 홈즈를 읽고 있는데 말입지요 으음..... 과연 이 남자를 신사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인가...... 어렸을 땐 제 깜냥으로 해결 못하니까 도와주세요 데꿀멍 찾아온 주제에 자기가 맞다고 고집부리고 맨날 홈즈한테 당하면서 초반 잘난 척을 포기 못하는 레스트레이드를 보며 참으로 짜증이 났었는데 말이죠. 그게 말이죠.... 

빅토리아 중기에 태어나 교육받은 신사계급의 남자이니 행동에 신사적인 요소가 없을 수야 없겠지만 실제로 빅토리아 후기~에드워디안 시대를 살았던 코난 도일이 묘사하고자 했던 남자는 결코 그 시대 사람들이 평균적으로 생각했던 신사가 아니었을 거예요. 괴짜와 신사 중 그 남자의 불멸성을 담보해주는 부분은 전자가 아니겠음? 그 둘의 조합이라는 게 더 정확한 분석이겠지만 그 비율을 따지자면 말이죠. 그래도 BBC 셜록은 좀 극단적이긴 하죠. 맞아요.... 원작 홈즈가 신사가 아니라고 해서 그런 인격파탄자였던 건 아니죠. ㅠㅠ 


4. 주드 로의 왓슨도 왓슨이라고 받아들이면서 로다주의 홈즈는 홈즈가 아니라고 우기는 제 마음을 저도 모르겠습니다. 근데 조니 리 밀러의 셜록은 또 셜록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뭐냐 이거;;) 문제는 이 남자가 파일로 밴스나 엘러리 퀸의 이름을 달고 나왔으면 그건 또 그것 나름대로 조쿠나 하며 봤을 거라는 거지만. 


5. 근데 또 모팻의 아이린 애들러를 생각하면 까짓꺼 로다주의 홈즈를 홈즈로 인정 못할 게 뭐냐 하는 생각이 든단 말이죠. 그래 홈즈일 수 있지. 무엇보다 그 많은 셜록 홈즈 각색물들 중 원작 마이크로프트에 가장 가까운 체중을 가진 스티븐 프라이를 형으로 둔 홈즈 아니냐능. 그림자 게임의 모리어티랑 모런은 훌륭했습니다. 급조한 바람에 셜록 홈즈의 망상라는 패스티지까지 나온 원작 모리어티보다도 시대적 배경까지 더해서 더 위협적이고 더 현실성 있는 악당이었음. 수학교수 설정도 살려줬고 무엇보다 모리어티쯤 되는 악당 수괴가 마지막에 셜록 홈즈랑 주먹으로 붙는다는 설정도 설득력 있게 만들어줬음. 솔직히 BBC랑 붙는 바람에 이만큼의 성의를 보인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난 로다주 홈즈 1편을 기억한다구. 심지어 친구가 패트릭 제인만큼도 추리를 안하면 어쩌자는 거냐고 했었음. 패트릭 제인도 그레고리 하우스도 홈즈의 파생 캐릭터인데 원본 이름 달고 나오기까지 한 주제에 로다주 홈즈가 저 셋중 제일 안 홈즈스러웠음.  


6. 로다주 홈즈가 싫은 것도 아니면서 (귀여움. 귀여우면 뭐든 용서가 됨) 재미있긴 한데 홈즈는 아냐라고 고집부리고 있는 이유는 이 남자에게 꽂힌 적이 없어서가 아닐까. 그러니까 로다주한테 꽂힌 적이 없다는 게 아니라 로다주가 연기한 홈즈한테 꽂힌 적이 없다고. 로다주 홈즈가 안홈즈스러운 것만큼이나 안왓슨같은 주드 로 왓슨한테는 의외로 너그러웠던 게 주드 로가 연기한 왓슨에게서 정말 리얼리티를 느낀 순간이 1편에 있었거든. 둘이 같이 감옥갔을 때 주왓슨이 쳤던 대사. 

'난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어.' 

'넌 인간이 아냐!'

극장에서 낄낄거리며 웃었던 기억이 ㅋ 


7. 스티븐 프라이 빼놓고는 마이크로프트 홈즈역으로 캐스팅된 배우들이 하나같이 날씬함. 세상은 썩어있음. 심지어 엘리멘트리 마이크로프트는 동생보다도 조안이랑 남녀케미가 돋음. 세상이 뭔가 잘못 돌아가고 있어! 


8. 펄버 & 모팻의 아이린 애들러를 본 이후에 마음의 상처를 다스리기 위해 그라나다 홈즈판 보헤미안 스캔들을 봤는데 보헤미안 국왕이 진짜 대놓고 졸부스러워서 이건 이것 나름대로 당황스러웠음. (졸부같다고 묘사되어있긴 했는데 행동거지가 나름 신사스러워서 잊고 있어따...) 게다가 뭔가 저 배우 연기가 전반적으로 오버함. 애들러 언니는 여기서 최고로 멋짐. 처음에 국왕이 나름해보겠다고 사람 고용해서 애들러 집 터는 장면 보여주는데 거기에 몸소 권총들고 나와 맞서시는 언니. 심지어 스쳐지나가는 애들러 언니 남편 노턴까지 멋짐. 미국으로 돌아가는 뱃길에서 호신용으로 갖고 있겠다던 국왕과 함께 찍은 사진을 물 속에 던져버리는 애들러, 그리고 그런 그녀를 곁에서 묵묵히 바라봐주고 있던 노턴. 원작에서 홈즈는 애들러가 노턴이랑 결혼하자 '이제 사진은 애들러 본인에게도 짐이다, 남편에게 있다는 걸 들켜서는 안되니까' 라고 말하지만 그라나다 TV판에서의 노턴은 그녀의 과거를 다 알면서 사랑한 거임. 근데 여기서는 아이린이 아니라 '이레네'라고 부르더라? 철자가 Irene이니 읽는 법이 갈릴 만도 하다. 그러고보니 레스트레이드도 정확하게 어떻게 읽는지 의견이 갈린다고. 대충 다들 '레스트라드'라고 읽는 것 같음. '여성 모험가'라는 묘사도 그렇고 원작에서부터 그녀가 발레리나나 배우, 오페라 가수 같은 직함 하나 달고 귀족이나 왕족 등 지체높은 양반 정부노릇하는게 본업인 이른바 고급창녀였던 건 맞지만 그래도 그렇게 대놓고 자기 고객들한테서 빼낸 정보로 모리어티랑 결탁해서 나랏돈으로 호의호식하려다가 셜록에게 뒷통수맞고 퇴장하는 여편네로 그릴 필요는 없었잖아..... 진짜 그렇게 대놓고 셜록의 '첫사랑'비스무레한 포스를 풍기고 싶었으면 셜록을 유혹해서가 아니라 정말 기지로 뒷통수쳐서 이긴걸로 해주던가 엉엉엉 셜록에게 처음으로 '그런' 기분을 들게 만든 여자의 이름이 아이린 애들러 이외의 다른 것일 수는 없을 거라 생각하면서도 '나으 아이린 애들러는 이러치 아나!!!!' 밖에 생각 안나는 나. 아!!!! 이거시 바로 BBC 셜록을 인정못하는 원작 홈즈팬의 마음인가! 깨다라써!!! 과연 역지사지. 세상이 평화로워지는 주문 ㅠㅠㅠ 

  

9. 애정과는 별개로 설정을 제대로 반영한 정도만 따지면 BBC의 존은 너무 의사 같지 않고 CBS의 조안은 너무 반듯하게 살아온 모범생이라 왓슨 특유의 될대로 되라 기질이랄까, 홈즈가 하자고 하면 첨엔 빼다가도 결국엔 사고칠 거 다 치는 그런 느낌이 없고 끊임없이 투덜대고 화내면서도 결국 홈즈가 하자는 대로 다 해주는, 알고 보면 제일 과격하고 다혈질인 주드왓슨이 그나마 의사+군인+스릴광 설정에 제일 충실해보인다는 게 함정. 지적으로 너무 홈즈한테 의지안하고 혼자서도 잘한다는 게 서운할 지경. 근데 주드 로 얼굴 가지고 순진한 칭찬머신이 되는 것도 힘들긴 했을 거다. 


10. 마틴 프리먼의 존 왓슨은 101에서 보여준 지치고 날카롭고 감정이 그대로 드러나면서도 희한하게 단단해보이던 얼굴이 제일 좋았음. 아직 마이크로프트의 정체를 모를때 둘이 대면하는 장면은 백미 중의 백미. 그렇다고 해서 마냥 딱 부러지게 곧기만 한 것도 아니다. 대차게 말대답하고 비꼴 거 다 비꼬면서도 마이크로프트랑 똑바로 눈을 못마주치는 장면이 하나 있는데 그것만큼 존 왓슨이란 남자의 두려움을 효과적으로 보여주는 연출이 또 있을까? 거기에 낚여서 이러고 있는데 그 놈의 영드는 원래 한 시즌에 에피소드가 얼마 안되더라고. 존이 셜록에게 얼른 넘어가지 않으면 얘기 진행이 안되겠더라고. 아 놔..... 셜록이 없는 3년동안 다시 예전의 존으로 돌아갔을까 싶었는데 왠걸... 콧수염까지 달고 -_-;;;; 스틸 컷 봤더니 옷도 드디어 유니클로에서 벗어나 좀 전문직같아 보이는 걸로 입었던 거 같고 게다가 결혼까지 하시네;;; 강을 건너면 배는 버려야 하는 건가;; PTSD를 고친 후엔 셜록이랑 헤어졌어야 이 양반 인생이 좀 인생같아지는 거였나;;;; 



1. 너무 헐레벌떡 지르고 났더니 마음에 안들어서 대대적 수정. 절대로 설정덕후는 아닌데 가끔 꽂히면 애먼 곳에서 죽치고 앉아있는 듯. 


2. 기본적으로 왓슨 수인데 특별한 커플링은 없음. 왓슨 수라고 해서 모든 남남커플링에서 존이 바텀인 것도 아님. 메인 남성캐릭터와의 관계에서는 수쪽 포지션이지만 여자랑도 엮이고 소년이랑도 엮이고 아주 그냥 사랑은 잔칫상임. 삼대륙 왓슨의 위엄 -_-;; 


3. 배경은 정확하게 보어 전쟁 이후로 1906년쯤 됌. 하지만 딱 그 시기에 맞춰져있는 건 아니고 밸꼴리면 1902년에 일어났던 사건이나 1908년에 일어났던 사건이 현 시점에 일어날 수도 있음. 확실한 건 제1차 세계대전은 아직 안일어났고 보어전쟁은 이미 끝났음. 따라서 존이 참전한 전쟁은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아니라 보어전쟁. 에드워디안 시대이지만 기타 사회적 관습 및 복식에 관한 묘사는 빅토리안 중후기를 넘나들 거임. 자료 조사하기 귀찮아서 -ㅠ- 


4. 배경설정과 설명 등은 조세핀 테이의 '브랫 패러의 비밀', 제인 오스틴의 '설득'에서 야금야금 베껴왔음. 




1. 드디어!!!!!! 

아아 드디어 둘을 한 지붕 아래로 보냈사와~ 뭔가 무리수같지만 됐사와~ 더 생각하기 귀찮사와~ 큰 짐을 던 기분이어와~ 여기서부턴 원작 케미에 숟가락만 얹고 가도 될 것 같으와~ 


2. 쉽고 편한 지름길 냅두고 혼자 고산지대에서 산소부족으로 헉헉대며 전진하는 기분이지만 뭐, 제가 하루 이틀 이러고 산 것도 아니고.... 지금까지 거쳐온 팬덤들을 돌이켜보자니 좋아서 이런다기보다는 그냥 할 줄 아는 게 이게 밖에 없어서 이러고 사나봐요... 


3. 쓰는 저는 할 줄 아는 게 이거 밖에 없으니 이러고 있는다고 쳐도 읽어주시는 분들이 대체 뭐가 마음에 드셔서 계속 읽으시는 지 잘 모르겠어요 ㅠㅠ 이 외진 곳까지 일부러 찾아와주시는데 이런 소리나 하고 있고 죄송합니다 ㅠㅠ 




이 세계관에서는 타임 라인을 어떻게 잡아야할지 애매하네요. 일단 현재는 원작 사건이 그대로 일어나는 만큼 101 시점이긴 한데 모리는 존이랑 훨씬 일찍 만났고 기분이 업됐고 그래서 원작 시점보다 2~3년 일찍부터 홈즈 형제에게 자신의 존재감을 피력했던 걸로 치겠습니다. 음하하;;; 


+ 뻔히 다 아는 원작 사건을 AU에 맞춰 재구성하는 건 컨셉의 흥미로움과는 달리 꽤 지루한 작업이었습니다. ㅠㅠ 

++ 존이 모자라~ 존이 모자라~ 



빨리 돌아오지도 못했는데 짦기까지 해서 정말 죄송함다 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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